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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싶을 땐 하지 말자

by 오제이


"제가 최근에 영상에서 재밌게 본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요?"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나는 이런 말을 꺼냈다. 그리고 한참을 신나게 떠들다 갑자기 머릿속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거였더라...' 나는 그 이야기 속 재미있게 느꼈던 포인트를 잊어버려 이야기는 공중분해되어 버린다.


요즘 들어 가끔씩 이런 일이 생긴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신나게 말을 꺼냈다가 중간에 결론을 잊고 표류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치매에 걸린 것도, 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잘난 척하고 싶다가 생긴 문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편이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는 뭔가 가치 있는 정보가 담긴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냐는 판단에서인데, 엄청 거만한 생각이란 걸 나도 알고 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입을 다물고 싶고 멈추고 싶지만 그런 과시욕은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야기를 중간에 끊어버리는 실수를 하고 난 뒤, 나는 급격한 현타를 맞이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엄청 모양 빠진 내 모습에 허탈하고 쑥스러움을 느껴 이내 주눅 들고 만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 이야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따름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꺼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에 뒤늦게 후회한다.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오래된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말을 줄여야 한다>고 설파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할까 말까 싶을 땐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해도 되나? 싶을 때도 안 하는 게 좋다. 말은 정말 해야 할 때,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좋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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