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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지만 오히려 좋은 날

by 오제이


날씨가 오락가락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생각의 오만함을 알아차리고 금세 겸손히 마음을 다잡는다. 어찌 내가 자연의 섭리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수긍하지 못할 날씨는 없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하늘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가 내린다면 오는 비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하는 게 여러모로 더 이득이다. 피할 것인가 맞을 것인가 모을 것인가. 고민하다 보면 결국 답을 구하게 된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더러 생긴다. 이번에는 정말 망했구나 싶다가도, 어떻게든 끝까지 하다 보면 일이 완성되는 상황 말이다. 게다가 때로는 이런 일들이 처음 계획보다 오히려 더 좋은 결실을 맺기도 하는데, 그러면 굉장히 큰 행운을 얻은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두 배가 된다.


이런 삶 속 예기치 못한 행운들은 끝까지 움직여 해냈기에 만들어진다. 만일 누군가를 탓하며 신세 한탄만 했다면 어땠을까? 망했다 싶은 순간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공교롭게도 행운이란 건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난다.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고 해서 행운이 문을 두드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물며 복권만 해도 그렇다. 당첨번호를 알아도 복권을 사야 당첨금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지난밤 엽서에 쓸 우산 그림을 그리며, 차분히 자잘한 패턴을 그려 나갔다. 한참 밑그림을 그리고 난 뒤 채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위에 덧칠해진 색이 짙어 애써 그린 패턴이 모두 희미해지는 게 아닌가. 공들여 그린 시간이 허무해졌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끝까지 채색을 마무리한 뒤 오일 파스텔을 꺼내 패턴을 다시 그렸다. 기존보다는 다소 투박하지만 더 또렷하게 정성껏 색을 칠했다.


그림이 완성된 걸 보며 예상치 못한 근사함에 한껏 마음이 들떴다. 의도와 다른 결과였지만 오히려 더 멋져 만족스러웠다. 이날 내가 얻은 행운은 그것이었다. 기분 좋은 밤, 덕분에 평소보다 더 편안하게 잠들었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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