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인생의 최종 보스

by 오제이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쫓는다. 돈을 갈망하는 이는 아직 충분히 돈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고, 사랑을 얻고 싶은 이는 마음을 채울 만큼 사랑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그것을 향한 열망은 더욱 거세진다. 하지만 그 욕망이 지나치면, 오히려 그것을 미워하거나 엉뚱한 대상에게 질투심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나는 시간을 갈망한다. 이 말은 곧, 내게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하지만 나는 늘 시간이 모자라 갈증을 느낀다. 1시간만 더 잘 수 있다면, 1시간만 더 일할 수 있다면. 내 머릿속은 늘 그런 가정으로 분주하다. 그런데 이 갈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 나는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그만이건만, 그럼에도 나는 모든 일을 오늘 안에 끝내고 싶어 안달한다.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애 안에, 아니, 적어도 내 젊은 시절 안에 모두 마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불안이 되어 나에게 들러붙는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불안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돌아보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대부분 내가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착각하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보통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질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반면, 내 집 마련 문제는 다르다. 그것은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고,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불안이 된다.


결국, 나를 괴롭히는 모든 고민들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다. 때로는 그 ‘제어’란 것이 어떤 일에서 발을 빼는 것조차 포함한 채. 그런데 왜 나는 시간이라는, 도무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두고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시간을 더 원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낭비한 시간에 대한 뒤늦은 욕망이라는 사실을.



나는 어떤 일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결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하얗게 불태웠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반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개 내가 마음에도 없는 일에 시간을 흘려보낼 때다. 하지도 않을 일을 하는 척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대충 넘어가며 마치 큰일을 한 양 스스로를 위로할 때, 나는 비로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갈증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결국 내 게으른 태도와 부족한 성품 탓이라면, 스트레스를 없애려면 나 자신부터 고쳐야 하는 걸까? 이런 깨달음은 어쩐지 너무 가혹하게 들린다. 말은 쉽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기만 하다.


문득,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떠올랐다. 알파고가 스스로와의 대국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는 그 이야기. 나도 이제, 나 자신을 제3자로 놓고 냉정하게 마주하며, 논쟁하고 설득하고, 때론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여야 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이란 말은 참으로 쉽지만, 정작 그 길 끝에 ‘나 자신’이라는 최종 보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얼마나 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더는 미룰 수 없으니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별다른 철학도 아니고, 거창한 계획도 아니다. 그냥, ‘되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운이 좋아서, 어떻게든 뭐라도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고약하고 강력한 보스와의 대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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