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두 시간 넘게 식탁에 앉아 스케치를 했다. 노트 위에는 수십 개의 모자와 수십 개의 후추통이 빼곡하게 쌓여갔다. 나는 요즘 매주 사물을 하나씩 정해 반복해서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3주쯤 지났을 때, 문득 내 드로잉에 어딘가 작은 결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린 것들은 이상하리만큼 원본과 닮지 않았다. 분명 신중하게 선을 긋고 비례를 맞췄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닮아가겠지 싶었다.
그렇게 자책 반 위로 반으로 넘기고 있던 어느 날, 아내와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리던 순간, 아내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스케치북을 조금 세워서 그리는 게 어때요? 그렇게 놓고 그리면 형태 맞추기 어렵잖아요.”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종이와 눈의 높이를 맞춰야 형태와 비율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한 사실 앞에 새삼스럽게 놀라버렸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 말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그렇게도 기초를 무심히 지나쳐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과만 바라고 애쓰면서, 정작 가장 기초적인 자세 하나조차 바르게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끔 이런 덫에 걸린다. 목표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밟고 서야 할 발판이 엉성하다는 걸 모른다. 그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애써도 실력은 차오르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만 맴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른 일들도 혹시 이와 다르지 않은 건 아닐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허덕이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기본도 없이 근사한 결과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잠깐은 요행처럼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그런 성취는 바람 한 점에도 흔들리는 얇은 잎사귀처럼,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나는 다르다’고.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 굳이 남들이 걸어온 길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낡은 것을 거부해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유년 시절의 내가 그랬었다. 그 시절, 나는 기초 따윈 필요 없다고 믿었다. 세상은 틀에 박혀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틀을 깨부수는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 착각했다. “편견에서 벗어나겠다"라는 거창한 말로 스스로를 부추기며, 정작 무엇 하나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채 허공을 향해 팔만 휘저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들은 애처로울 만큼 가벼웠고, 방향도 없이 흔들렸다.
발밑이 늘 불안정했다. 딛고 설 땅이 단단하지 않았으니, 어디로 가려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속이 텅 빈 건물 같았다.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게 서 있었지만, 작은 바람에도 기우뚱했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뿌리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 휘청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기초 없이 서 있으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흔들리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흔들릴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발밑은 얼마나 단단한지, 돌아봐야 할 때라는 것을. 그러니 잠시 멈추어, 조심스레 나를 들여다보자. 이 흔들림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내가 되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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