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면 초콜릿을 먹는 이유

by 오제이


지난 주말, 아침 글쓰기를 마치고 집 앞 근린공원을 찾았다. 얼마 전 조성된 운동시설이 문득 생각나, 가볍게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체육관만큼 전문적이진 않지만, 그만하면 꽤 쓸 만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를 흐르는 바람,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는 운동에 묘한 리듬을 더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를 즈음, 마치 산행을 마친 듯한 개운함이 찾아왔다.


이전까지는 늘 말뿐이었다. “이번 주말엔 꼭 운동하러 공원에 가야지.” 수년을 그렇게 말만 해왔다. 매주 금요일, 아내가 주말 계획을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으레 “아침에 운동 좀 하고 올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말하면서도 서로 웃었다. 나도 알고, 아내도 아는 거짓말. 그게 반복되다 보니, 공원에서 운동하겠다는 말은 우리만의 농담 버튼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괜찮은 운동시설이 집 바로 앞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동안 복에 겨운 줄 모르고 살았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 한 번 하려면 한참을 나가야 한다는데, 나는 걸어서 1분 거리 안에 이런 보석 같은 공간이 있음에도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말마다 어설픈 핑계를 대며 마음만 먹고 말았던 그 나날들. 지금 생각하면, 그 마음들이 쌓여 내 안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작지만 확실한 포상을 준비했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부여하고, 해냈을 때 달콤한 선물을 주는 방식. 포상은 초콜릿이었다. 지난번 백화점에서 사 온 벨기에 초콜릿.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곧장 그걸 먹겠노라, 약속했다. 운동하고 초콜릿이라니,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살이 조금 찔 수는 있겠지만, 운동을 했으니 몸은 그만큼 더 튼튼해졌을 것이다. 초콜릿을 안 먹고 운동도 안 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 손해 같아 보여도, 사실은 이득이다.



나는 이 생각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0에 0을 더하면 0이지만, 10을 더하고 다시 10을 빼도 0이다. 결과는 같지만, 그 안에 흐른 에너지의 총량은 전혀 다르다. 후자의 0은 경험이 있고, 활력이 있고, 움직임이 있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이 순환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과도 닮았다.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경제가 확장된다. 우리 몸도 그렇다. 살이 찌든 빠지든, 그 안에서 근육은 생기고, 몸과 마음의 활력은 자라난다.


이 원리는 단지 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성장을 향한 모든 움직임에도 적용된다.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0이 아니다. 실패를 경험한 0은, 움직임이 있는 0이다. 나는 그것을 ‘살아 있는 0’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제는 겁내지 않기로 했다. 실수할까 봐, 실패할까 봐 망설이지 않기로. 그저 한 걸음 내딛고, 또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무엇인가를 해낸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그 자리엔 후회만 남는다. “그때 조금만 움직였더라면.” 나는 더는 그런 말을 남기고 싶지 않다. 실수를 하더라도 좋다. 앞으로 나아가 경험의 총량을 늘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아닐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