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료 얼음분쇄기 님의 이모부는 미국인이다. 그래서 그는 가끔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국적인 간식을 보내온다. 이번에는 새콤달콤한 초콜릿이었는데, 덕분에 나도 함께 맛보며 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외국에 친척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특별한 인연이다.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문화는 낯선, 그래서 오히려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문 하나가 열려 있는 셈이다. 얼음분쇄기 님의 조카들은 이미 몇 차례 미국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여름이나 다음 여름, 아들과 함께 이모부 댁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나는 외국인 친척은커녕, 해외에 거주하는 가까운 지인조차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얼굴이 있긴 하지만, 그들에게 묵을 곳을 청하는 상상은 어딘가 불편하다. 친척 집처럼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상상해 보곤 한다. 만약 내 이모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꿈꾸게 될까?
상상을 더해본다. 그 이모는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예술을 즐기며 살고 있다. 아침엔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오후엔 직접 만든 식사로 테이블을 차린다. 창 너머로 햇살이 부드럽게 흘러드는 커다란 작업실도 있다. 그리고 말한다. “너희 부부는 몸만 와도 돼. 커피도, 식사도, 공간도 다 준비돼 있으니까. 실컷 즐기다 가렴.”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이야기다.
만약 실제로 그런 제안을 받게 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완전히 오케이’라고 답하겠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심지어 1년이든. 그곳에서 일도 하고, 창작도 하고, 인생을 천천히 살아보고 싶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이어가던 순간, 불현듯 내면에서 작은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모네에 갔을 때, 나는 이모가 내려준 커피만 마시고, 이모가 차려준 식사만 먹다 돌아올까?’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 낯선 골목과 낯선 냄새, 낯선 언어를, 조금 더 욕심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답할 수 있다. “당연히 이것저것 즐겨야지! 아무리 이모 집이 편해도 거기만 있으면 좀 아깝잖아?”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순간 지금의 내 삶과 상상의 이모네 집이 겹쳐 보였다. 왜였을까?
그것들이 겹쳐 보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에 특별한 불만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벅찬 기쁨도 없다. 적당한 급여, 무던한 환경, 별다른 굴곡 없는 일상. 어쩌면 나는 지금, 잠시 머물다 가기엔 지나치게 안락한 '이모의 집'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넓고 다양한 세상에서,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오래 한자리에 머물렀을까. 여행은 실패해도 추억이 된다지만, 인생은 실패가 두렵고 되돌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나를 머물게 한 건 아닐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인생도 여행처럼 살아볼 수는 없는 걸까?
프랑스 거리의 커피는 때로 텁텁할 수도 있다. 메뉴조차 못 읽고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정체 모를 향신료 범벅의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누구도 실패라 여기지 않는다. 다만 여행 중 만난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사진 한 장 남기고, 다음에 다른 가게를 찾으면 될 일이다.
인생도 다르지 않지 않을까.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당황스럽고, 가끔은 고약한 향기를 품고 있더라도, 그 안에야말로 삶의 묘미가 숨어 있지 않을까?
‘일상을 여행처럼.’ 언젠가 내 삶의 표어였던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땐 그냥 좋은 말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 말이 훨씬 묵직하게 다가온다. 다시 한번, 인생을 여행처럼 살아볼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의 시작은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열어볼까.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선언했다.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그래, 문을 열고 나아가자.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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