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강하다

by 오제이


“자, 면담 시간을 만들어줬으니 이제 불만을 말해 봐, 난 들어줄 준비가 됐어.”

“...”


“음, 사실 지난번에 내가 왜 그랬냐면...”

“...”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뭐냐면...”

“...”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 앞에서의 침묵은 묘하게 조용한 압박이 되어, 그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몰아세우거나 따져 묻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말없이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상대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려는 단단한 의지가 스며 있고, 그 시선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모든 말에 즉각 반응할 필요는 없다. 생각 없이 쏟아지는 말들에 일일이 응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생각마저 그 흐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다. 그럴 땐 차라리 조용히 침묵하는 쪽이 낫다. 말 대신 관찰하고, 그의 말 뒤에 숨은 진심을 조심스럽게 헤아려 보는 것. 그저 묵묵히, 그러나 예리하게 바라보는 것. 그 침묵이, 때론 그 어떤 말보다 깊숙이 상대의 마음을 파고든다.


목적이 있는 대화에서는 더욱 말을 아껴야 한다. 쉴 새 없이 떠들기보다는, 상대가 말하도록 이끄는 쪽을 택한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의 실마리를 건드리고, 그가 자신도 몰랐던 속마음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도록 돕는다. 그러면 어느새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다. 나는 다만 그의 말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며, 정답에 가까운 곳으로 조심스럽게 그 흐름을 이끈다.


“아, 오늘은 듣기만 하려고 했는데, 또 나도 모르게 말을 너무 많이 해버렸네. 그래도 속에 있던 말들 다 쏟아내니 후련하다.”


그 말이 들릴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말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걸 알게 된다. 잘 들어주는 것은, 잘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화의 본질은 공감이며, 좋은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말하기 기술만이 아니다. 오히려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진짜 대화가 가능해진다. 자신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건 대화가 아니라 혼잣말, 아니면 강연에 가깝다. 대화를 강연으로 만들지 말자.


경청은 고귀한 행위다. 나의 시간을 온전히 그에게 내어주는 일이다.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를 계산하지 않고,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일. 그것이 경청이며, 곧 공감이다. 공감은 대화의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잘 들으려 애쓸수록 내 입은 점점 무거워지고,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 말은 깊이를 갖는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그의 말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안에서 비로소 진짜 대화가 피어난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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