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거 딸기 맛 초콜릿인데, 한국에선 안 파는 거래요. 여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와 봤어요. 맛 좀 봐요.”
“음… 근데, 내가 이상한가. 딸기 맛은 하나도 안 나고, 쓰기만 한데요. 이거 다크초코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도 먹어봤는데, 새콤한 맛 나던걸요? 딸기 맞아요.”
"그렇지만 난 전혀 그런 맛이 안 나는데요? 이거 다크초코 아니에요?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다크초코라고 나와요.”
“이건 한국에 안 파는 거라 그렇게 검색될 리가 없어요. 잘못 본 거예요. 딸기 맛 맞아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렇구나… 내 입맛이 이상한가 봐요.”
지난 오후의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고, 이미 먹어본 기억이 있었기에, 그 초콜릿은 당연히 딸기 맛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아내의 말을 의심하면서도, 실은 '그럴 리 없다'는 마음으로 애써 무시했다. 나의 확신은 너무 단단했고, 아내의 감각은 너무 가볍게 여겨졌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다크초코였다. 초콜릿을 받아올 때, 딸기 맛과 다크초코가 섞여 들어왔던 것이다. 겉포장의 색이 문제였다. 이 초콜릿은 맛별로 포장지 색이 다른데, 다크초코도 딸기 맛과 비슷한 붉은 라벨을 쓰고 있었다. 나는 보통 다크초코는 검은 포장을 쓴다고 생각했기에, 포장만 보고 믿어버린 것이다. 나는 나의 기억과 판단을 진실처럼 여겼고, 그 안에 틀림이 있을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아내가 해외 사이트에서 실제 딸기 맛 초콜릿의 포장 사진을 찾아낸 순간까지도, 나는 계속 아내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아내가 자꾸 자기 말이 맞다고 하는 통에 무안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내의 집요한 검색 덕분에 사실은 드러났다. 나는 그제야 나의 오만함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작고 사소한 실수였지만, 내면은 깊이 흔들렸다. 나는 내가 얼마나 쉽게 편견에 기대고, 얼마나 쉽게 상대를 무시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느꼈다.
나는 곧장 아내에게 사과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라고 우기고, 아내 말을 무시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과를 꺼내는 입에서는 말보다 더 큰 무언가가 밀려 올라왔다. 가벼운 사과였지만, 그 안에 담긴 미안함은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그 낯설고 깊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 보는 순간에 찾아올 법한 불편한 진실의 무게였다.
만약 이 상황이 뒤바뀌었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묵묵히 초콜릿을 검색하고, 조용히 진실을 찾아냈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남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쓰면서도, 상대방의 틈을 공격하지 않는 태도. 아내는 나를 이기기 위해 증명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의 판단을 지키기 위해 애쓴 것이었다.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나는 오히려 더 큰 부끄러움에 빠져들었다. 나의 옹졸함, 나의 부족함이, 그녀의 크고 단단한 마음 앞에서 더 또렷이 드러났다.
누군가는 다정함과 지혜로움도 재능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때때로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놓치고, 나의 기억을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기는 오만함을 보인다. 이번 일은 작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겸손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 교만한 마음을 조금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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