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기와 벌써 일 년

by 오제이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6개월 전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결심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곧장 계단을 오르자고. 마음은 단단했던 것에 비해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쓰자니, 다음 날마다 어김없이 근육통이 찾아왔다. 그래서 퐁당퐁당, 어떤 날은 4층까지만 오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조금 더 올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르고 멈추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천히 근육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계단 오르기는 나의 일상 속 루틴으로 자연스레 굳어졌다.


돌아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6개월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해 왔는데도 몸은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없다. 애써 쌓은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월부터는 계단을 오른 날마다 달력에 작은 계단 모양 표시를 그려 넣어왔다. 오늘 자세히 보니 빈 날이 거의 없다. 내가 이렇게까지 성실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사실 매일 계단을 오를 때면 어김없이 ‘오늘은 계단을 오르면 안 되는 이유’와 싸워야 했는데 말이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바보 같은 핑계들을 이겨낸 내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제는 좀 특별했다. 잘 풀리지 않는 코드에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알람 - 계단 오르기」. 평소 같았으면 귀찮았을 텐데, 어제만큼은 반가웠다. 이참에 마음에 환기도 시키고, 온몸에 피도 세게 한 번 돌려보고 싶었다. 안 풀리는 코드를 붙잡고 앉아 있는다고 해서 답이 저절로 떠오를 리는 없으니, 계단을 오르는 편이 오히려 더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비상계단 앞에 섰다. 문 열림 버튼을 눌러 잠금을 해제하고, 묵직한 방화문을 밀고 계단실에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이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나는 게임 속 던전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라는 경고 창이 뜨는, 이 안에서 벌어질 전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한 번도 입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래봤자, 조금 피곤한 것뿐이니까.


234. 내가 매일 마주하는 계단의 숫자다. 이번 계단 운동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건물의 1층과 2층은 다른 층보다 계단 수가 약간 더 많다. 아마 로비와 상업 공간의 층고가 높기 때문이겠다. 다만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의문이 있다. 왜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만 유독 높이가 다를까? 숨은 건축 규정이라도 있는 걸까?


어쨌든 계단을 오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지금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지하는 것이다. 사용하는 근육에 집중하고, 조금 더 힘을 준다고 생각하면 운동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반면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영상이나 음악에 몰입한 채 무의식적으로 오르면 뇌는 그걸 노동으로 인식해 버린단다. 그래서 나는 계단을 오를 땐 항상 휴대폰을 멀리 두고, 명상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감각하며 한 걸음씩 오른다.


하지만 명상과 마찬가지로, 계단 오르기도 하다 보면 자꾸 다른 생각들이 고개를 든다. 어제는 풀리지 않던 코드가 자꾸 떠올랐다. 그 생각에 빠져 계산을 하다 보니 어느새 4층이었다. 2층과 3층을 어떻게 지나온 건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계단에 집중하려 했지만, 한 번 떠오른 아이디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빠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또 훌쩍 흘러가 있다. 이건 운동을 할 때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도 반복된다. 올해만 해도 그렇다. 반년이 훌쩍 지났고, 6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 끝나가고 있다. 여름은 언제 오려나 싶었는데 벌써 장마가 시작됐다.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다.


운동할 때 근육에 집중하듯, 하루하루에도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인생도 2층과 3층처럼 아무 기억도 없이 지나가버릴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고자 애쓴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기록하는 이유다. 그래야 잊히지 않을 것 같아서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나는 대개 웃으며 넘긴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이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거든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보다 더 근사한 인생이 또 있을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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