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일들을 기록한 매우 특별한 일지

by 오제이


시리얼과 두유, 그리고 달걀 세 알.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점심을 단숨에 삼키고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뗐다. 6월의 점심시간, 빌딩 밖은 이미 여름이었다. 그늘은 제법 서늘했지만 볕 아래 서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날씨가 되어 있었다.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종로와 을지로를 두리번거리며 벤치를 찾았다. 평소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자리들이 오늘따라 더욱 귀해 보였다. 도심 속 높은 빌딩마다 의무적으로 조성한 공개공지들이 있지만, 그늘 하나 없이 햇빛을 정통으로 받아내는 탁 트인 공간들은 마치 “앉을 자신이 있다면 앉아보라”라고 무언의 도전을 건네는 것 같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미래에셋 타워 앞 작은 광장을 발견했다. 드문드문 벤치가 놓여 있고, 그 뒤로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길게 솟아 있었다. 메타세쿼이아가 만드는 그늘은 은행나무나 벚나무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소음도 과하지 않아, 나름 괜찮은 독서 장소를 찾아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점심을 마치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갈매기 울음소리처럼 묘하게 귀를 긁는 자전거 소리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앉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펼쳤다. 한참 읽어 내려가던 중, 한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무의미한 일들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따른 듯한 매우 특별한 일지’


꼭 내게 하는 말 같아 부끄러워졌다. 나는 매일 세상 곳곳에 글을 남기지만, 그중 대부분은 시시하고, 가끔 가뭄 속 콩처럼 기발한 생각이나 인사이트가 실릴 때도 있다. 그런 글들이 혹여 무의미한 일이자, 일종의 소음 같은 것은 아닐까. 부쩍 그런 걱정을 한다.


요즘 들어 국내의 에세이나 문학 작품을 읽으며, 내 글쓰기 실력이 한참 모자람을 절감했고, 그 감각은 점점 짙은 그림자처럼 마음에 드리운다. ‘애초에 문학을 하려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말을 나름대로 밑밥처럼 깔아두고 글을 쓰곤 했지만, 사실 내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것이야말로 변명이자 도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빙글빙글 맴돈다.


제 실력을 명확히 본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몰랐다면 좋았을 테지만, 일단 알아버리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예전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력을 교정한 사람이 눈이 너무 좋아져 낭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렷해진 눈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의 주름, 트러블, 잡티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그것이 오히려 속상했다는 말이었다. 나도 그렇다. 이제는 내 모든 것들이 너무 분명하게 보여버려서, 더는 모른 척할 수 없게 됐다. 이토록 분명한 것을 언제까지 못 본 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계단 오르기와 벌써 일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