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 산다

by 오제이


아침 산책을 좋아한다. 여덟 시 무렵 사무실을 나와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한 바퀴 돈다. 계절에 따라 손에 쥐는 것이 달라지는데, 겨울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여름엔 시원한 에너지 드링크를 들고 서늘한 아침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차갑거나 따뜻한 그 온기가 손끝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지는 순간, 나는 문득 하루의 시작이 막 열리는 문턱에 선 기분이 든다.


을지로 일대는 늘 공사 중이다. 중장비 차량이 무거운 철을 긁으며 오가고, 신호수가 도로 위에 서서 출근길 행렬을 이끈다. 나는 그 복잡한 흐름을 역행하며 그 속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슬픔과 피곤, 무기력, 그늘이 진 표정들이 아침의 공기처럼 서늘하게 스쳐간다. 마치 최후의 심판을 받으러 가는 이들처럼,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표정들. 하지만 그 틈새에서 반짝이는 눈빛을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미간이 펴지고 눈에 생기가 돈다. 발걸음은 가볍고, 마치 상을 받으러 가는 사람 같다. 그 눈빛과 걸음에 나도 덩달아 기운을 얻는다. 어쩌면 그 기운을 받고 싶어서 아침마다 이 산책길을 걷는지도 모르겠다.


을지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을지로 2가 사거리 교차로다. 여덟 갈래로 뻗은 횡단보도 정지선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은 신한 L 타워 앞, 을지스타몰 출입구 부근이다. 그곳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남산과 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빌딩 사이로 고딕 양식의 성당과 남산의 푸르름, 서울타워의 첨탑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흐린 날에는 비구름이 타워의 허리를 감싸고, 맑은 날에는 남산의 나무들이 선명한 윤곽을 드러낸다. 그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된다.


을지로는 늘 변화하고 있다. 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며, 소매점포들조차 수시로 새 단장을 한다. 그 덕분에 산책길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그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 속에서 나는 마치 혼자 멈춰 선 듯한 기분으로 흘러가는 사람과, 순간과, 도시의 숨결을 지켜본다. 가끔은 음악을 들으며, 가끔은 도시의 소음과 숨결을 귀에 담으며 거리 위에 선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이 소음과 풍경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동경하던 바로 그 모습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은 채로.


서울, 이 거대한 도시. 그 안에서도 가장 분주한 을지로 한복판에서 나는 누구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 이 사치스러울 정도의 평화로움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더없이 아름답다. 변화무쌍한 도시의 아침 공기와 풍경, 사람들의 표정, 그 모든 것이 오늘도 나를 산책길로 이끈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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