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그렇게 운이 없었나?

by 오제이


주말을 맞아 오전부터 카페로 향했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집에 머물렀으니 일요일만큼은 집 밖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주말 오전에 해야 할 빨래며 침구 청소 같은 일들을 부지런히 마치고서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문밖으로 불어온 공기는 뜻밖에도 서늘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증막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하루아침에 이토록 선선해지다니.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싶었다. 러브 버그 떼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창궐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춘 것도 그랬다. 세상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걸,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걸음을 옮겼다.


오전 11시, 카페는 의외로 한적했다. 늘 북적이던 시간인데 오늘은 눈치게임에 이긴 기분이었다. 평소 앉지 못하던 1층 벽 쪽,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에 가방을 풀고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했다. 앱으로 주문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기에 엑스트라 메뉴도 덤으로 올렸다. 조금 더 아껴볼 욕심에 다람쥐 앱에서 쿠폰을 사 추가했지만, 그만 쿠폰 사용 시 엑스트라 메뉴 할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깜빡했다. 욕심이 화를 부른 셈이었다. 공들인 시간에 비해 아낀 돈은 고작 몇 백 원. 별것 아니지만 괜히 기분이 씁쓸했다.


곧 노랗게 구워진 에그 샌드위치가 트레이 위에 올랐다. 허기진 아내를 위해 내 몫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 접시를 자리로 가져와 샌드위치를 크게 반으로 잘랐다. 더 큰 쪽을 조심스레 들어 아내 쪽 접시에 옮기려는 찰나, 포크가 툭하고 흔들렸다. 그 순간 샌드위치 절반이 회색빛 타일 바닥 위로 곤두박질쳤다. 3초 룰을 떠올릴 새도 없이 널브러진 그 모습이 어찌나 허탈하던지. ‘에이, 정말 별일 다 있네. 아깝다…’ 할인을 놓친 아쉬움 위에 음식까지 엎지르고 나니 괜스레 속이 더 허전해졌다.


잃은 것은 얼른 잊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자라면 조금 더 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이 시간, 아내와 마주 앉은 이 순간만큼은 다시 주문할 수 없이 소중하기에 얼른 아쉬움을 떨쳤다. 오늘의 대화 안줏거리는 ‘오징어게임3’였다. 어제 시즌 3가 공개되자마자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단숨에 몰아봤다. 연출이 어땠네, 스토리는 어떻네, 다음 시즌은 또 어떻게 풀어갈지 머리를 맞대고 상상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XXXX 차주시죠? 지금 집에 계시나요?"


사실 전화번호가 화면에 뜨는 순간, 우리 차에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주차 중 우리 차를 실수로 긁고 말았다고 했다.



카페가 집 근처라 다행이었다. 아내에게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초조한 눈빛의 아주머니가 서성이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사고의 당사자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들었다.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고, 대화에 신경을 쓰다 그만 사고를 냈다고 했다. 다친 데 없으시냐 묻자 아주머니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며 엷게 웃었다. 다행이었다.


우리 차는 범퍼, 상대 차는 뒷문 쪽이 긁혔다. 나는 손상 부위를 사진에 담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아주머니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미한 사고였지만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갔다. 보험 접수를 하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고 접수가 처음인 나도 마음 한편이 얼떨떨했다. 잠시 후 보험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AI 상담사가 사고를 접수했고, 담당자가 곧 배정된다며 안내했다. 언제 세상이 이렇게 자동화되었나 새삼 놀라웠다. 정말 머지않아 로봇이 직접 손해 사정을 보러 오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면허를 딴 지 20년이나 됐다. 그동안 사고를 내본 적이 없었기에 보험 접수 과정도 생소했다. 경미한 사고였고, 상대측에서 알아서 한다고도 했다. 사람 다친 일도 없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니 첫 사고가 이렇게 가벼운 일인 것은 오히려 큰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내게 잇달아 일어난 크고 작은 아쉬움들은 이 ‘행운’을 위해 준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오늘 저녁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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