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과의 싸움, 백전 백승 무기는?

by 오제이


지난밤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저녁 먹기 전에 잠깐 펼쳐 들었던 심리학 책이 떠올랐다. 요 며칠 열심히 붙들고 있는 그 책은 유난히 졸음을 부르는 책이다. 게다가 주말의 더위를 뚫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하나 까먹고 책상에 앉았더니, 졸음은 밀려드는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마치 시험공부라도 하듯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앉았고, 나는 태블릿을 들고 있었는지 책을 들고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비몽사몽 해졌다. 눈꺼풀에 힘을 주어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자 했지만, 그 덕에 책의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쳐다보면 졸음이, 졸음을 떨치면 책의 문장은 사라지는 그 사이에서 나는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졸음과 싸우면서, 나는 십 분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어느새 2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20분의 쪽잠은 내 수면 패턴을 망가뜨렸다. 정신이 또렷해진 탓에 당장 고시 공부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젯밤, 잠에 들기 30분 전. 나는 평소처럼 잠에 좋은 영양제를 한 알을 삼켰다. 약을 먹지 않아도 그즈음 엔 슬슬 잠이 와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기미도 없었다. 물배만 찬 것 같은 허망한 느낌이었다. 나는 자기 전 루틴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 순간 직감했다. 오늘 밤은 길겠구나. 몸은 지쳤는데 눈은 점점 더 또렷해지는, 일명 각성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을 감아 보았지만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온몸을 덮쳤다. 에어컨 바람에 방은 충분히 시원했건만, 나는 마치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열기에 휩싸인 기분이 들었다. 몸속 어딘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가 타오르는 듯했고, 그 불은 불안과 걱정이 던지는 장작에 점점 더 활활 타올랐다. 쓸모없는 잡생각, 내일의 할 일, 삶의 목적과 방향, 먹고 살 걱정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며 머릿속을 포화 상태로 만들었다. 머리가 감당하지 못한 불씨는 가슴으로 옮겨붙었고, 심장은 쿵쾅쿵쾅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며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30분쯤 뒤척이다 결국 거실로 나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 먹었던 영양제를 한 알 더 삼켰다.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고르고,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뒤척였다. 들숨 7초, 날숨 7초, 멈춤. 수면을 부른다는 호흡법을 반복했지만, 잠은 요원했다. 또 30분을 허비하고 결국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는 한숨도 자지 못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순간이었다.


이 방법까지 쓰겠다는 것은 정말 갈 데까지 간 거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긴급조치다. 내일 아침 회사에서 중요한 일정만 없었어도 그냥 밤을 새우고 갔겠지만, 더 이상 잠을 미룰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나의 비밀 병기를 꺼냈다.



불면과의 싸움에서 백 번 싸워도 백 번 지지 않는 나의 최후의 전술은 바로 ‘혈당 스파이크와 전공서 읽기’이다. 둘 중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해도 웬만한 불면은 모두 해치울 수 있지만, 오늘은 시간이 너무 지체됐기에,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우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웠다. 그리고 우유 안에 내가 애정하는 앤디스 민트 초콜릿을 녹였다. 한두 바퀴 저었더니 초콜릿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갈색빛 혈당 포션으로 재탄생했다. 이어서 요즘 손길이 뜸 했던 찻장을 열었다. 새콤달콤한 매실 시럽이 발라진 파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두 개까지도 필요 없다. 하나면 충분했다.


파이와 초코우유를 마시며 비스듬히 비춰오는 취침 등 아래에서 책을 펼쳤다.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책장 한 쪽에 치워뒀던 벽돌 책이었다. 책갈피가 꽂혀있는 쪽을 펼쳐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까지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이전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참 오랜만에 꺼낸 모양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 더 머리를 쓰게 될 테니까.



그렇게 십여 분쯤 흘렀을까? 마음이 편안해지며 동시에 자리가 불편해졌다. 얼른 침대에 가서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됐구나. 올 것이 왔다.’ 나는 침실로 돌아가 세 번째 여정에 올랐다. 귀마개를 꽂고 안대를 쓴 뒤 수면 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그리고 양손 시계에서 ‘징~~ 징~~ 징~~’ 아침 알람이 울렸다. 그렇게 아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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