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얼음분쇄기 님에게 연락이 왔다. 월요일 오전에 작업이 있다고 했다. 정확한 시간은 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남들이 출근하기 전일테다. 나는 늘 서너 시간 일찍 출근하니 그 시간에 당연히 회사에 있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시간외근무였다. 회사는 마땅히 나의 양해부터 구하고 미안하다는 내색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염치없는 일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이제는 단단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게 얼음분쇄기 님의 문제인지 회사의 문제인지 알 길이 없고, 공연히 파고들었다가 괜한 소란만 일으킬까 망설여다.
월요일 아침, 나는 새벽같이 회사에 도착했다. 작업 준비를 마치고 얼음분쇄기 님을 기다렸다. 아침해가 창가로 떠오를 무렵,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오늘 작업 취소, 커피나 한잔하자.」 순간, 허탈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이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워밍업을 한 셈 치기로 했다.
잠시 후 얼음분쇄기 님이 도착했다. 바로 나갈 줄 알았는데, 그는 태연히 컴퓨터를 켰다. 오전 일거리를 조금 처리해두고 여유 있게 나갈 심산인 듯했다. 그저 잠깐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은 길어졌다. 그는 종종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문득 이 작업의 주체가 그인지 나인지 혼란스러워졌다. 40여 분쯤 지나서야 작업은 끝났다. 아직도 출근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회사 건물 아래층의 한적한 카페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카페는 여유로웠다. 따스한 모닝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다. 금식하는 날이었지만 이 귀한 아침 티타임을 외면할 수 없어서, 오늘 하루쯤은 그냥 먹기로 했다. 우리는 베이글을 반씩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음분쇄기 님과는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공감할 이야깃거리도 없어서였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도 우리는 서로 알아서 입을 조심한다. 아마도 일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게 괜한 구설수로 번지기 전에 자연스레 입을 닫는 듯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내 속에 담아두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현명한 답을 구할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엔가, 누군가에게 이 답답한 마음과 사정을 쏟아놓고 싶었다. 그리고 혹여 운이 좋다면, 나보다 조금 더 세상을 오래 산 그에게서 내 문제를 푸는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도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마디마디가 이어져 한순간도 공백이 없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찾던 답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허무하거나 헛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었고, 시간을 써주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주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게다가 내가 무척 소중히 여기는 아침 집중력을 나에게로 향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값졌다.
비록 정답은 얻지 못했지만, 나는 커다란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나는 그의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잘 숙성시켜 언젠가 그에게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품고 하루를 시작하니, 지난밤 불면으로 무거워진 몸과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아침.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선물 같은 아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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