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와중에 또 일이 들어왔다. 달력을 펼쳐 워킹데이를 세어보았다. 일정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긴 한숨이 먼저 새어 나왔다. 회사에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다야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게 낫다는 걸 알면서도, 그 바쁨이 혹여 가짜 바쁨은 아닐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몸은 분주하지만 돈이 되지 않고, 회사에 실질적 이익을 더하지 못하는 일, 그런 것이 바로 가짜 바쁨이 아닐까. 그런 일은 애초에 의욕도, 욕심도 샘솟지 않았다.
몇 주 전 연봉 조절 시기, 회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여러분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잠시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이 오래오래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경영을 하다 보면 여윳돈을 비축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 그래야 먼 훗날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고 힘을 비축해야겠다고. 근로자도 힘을 모아두어야 오래 일할 수 있다. 늘 100퍼센트, 풀 파워로만 달리면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 회사의 논리처럼 나도 나 스스로를 위해 힘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조율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의 몫이다.
‘가짜 바쁨에 해당하는 일에는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 그게 내가 세운 기준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떤 일이 가짜 바쁨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나는 그것이 리더의 몫이라고 여긴다. 리더가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진심으로 설득하고 팀원들의 마음속에 그 성공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진짜 바빠도 되는 일이다. 그 프로젝트가 어떻게 회사를 살찌우고, 팀을 성장시키며, 나에게도 어떤 열매를 줄 것인지 어필할 수만 있다면, 그건 기꺼이 전력을 다해도 될 일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루틴 속에서 그저 이름만 프로젝트인 일들은 다르다. 그런 일에선 애써 힘을 쏟기보다, 관성에 따라 적당히 움직이는 것이 맞다. 그 일이 있든 없든 별반 달라질 게 없다면, 변화의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 힘은 아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중요한 일이 왔을 때 그 힘을 쏟을 수 있다.
그런데 또 의문이 스친다. 언제쯤 최고로 힘을 쏟을만한, 이른바 전설의 1군을 투입할 만큼 굉장한 일이 들어올까? 혹여 지금 막 들어온 이 일이 그런 프로젝트는 아닐까. 왜 이런 의심이 스며드는 걸까. 뭔가 어긋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걸까. 이 복잡한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그 위로 또 하루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오늘 나는, 과연 얼마나 힘을 내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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