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담 서비스센터

by 오제이


퇴근 후, 모든 정리를 마치고 업무일지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오렌지색 노트를 펼쳐 놓고, 그 위쪽에 문진을 얹은 뒤, 같은 색의 무인양품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찬찬히 되짚어보려던 찰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들~ 바쁘겠지만 엄마 좀 도와줄래?”


반가운 목소리. 요 며칠 문득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꾸만 엄마의 실루엣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순간에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엄마가 시니어 기자 활동을 해야 하는데, 로그인이 잘 안되네? 잠깐 봐줄 수 있어?”

“물론이지. 뭐가 잘 안돼?”


그렇게 시작된 원격 지원은 어느새 30분을 훌쩍 넘겼다. 나는 서비스센터 직원이라도 된 듯, 엄마의 계정을 차근차근 복구해 나갔다. 엄마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웹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나 역시 당황할 만큼 불편한 구조였다. 비밀번호를 찾고, 자동 로그인 설정을 도와드렸다. 이어 기사 쓰는 법, 사진 첨부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설명해드렸다.


돌아보면, 엄마는 참 많이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컴퓨터를 켜는 데에도 멀티탭이 꺼져 있으면 고장났다며 벌벌 떨던 분이셨다. 그런데 지금은 '업로드', '클립보드', '브라우저' 같은 말도 척척 이해하시고, 한 번만 시범을 보이면 금세 따라 하신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대학도 다니시고, 봉사와 지역사회 활동도 꾸준히 하신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아무 걱정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 너머로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몇 겹의 목소리가 겹쳐지고, 웃음소리도 스며들었다. 형네 가족이 엄마 집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엄마가 말하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형은 한때 행정병으로 복무할 만큼 컴퓨터에 능한데, 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내가 더 편해서? 아니면 형네가 다른 일로 바빠서? 떠드는 분위기를 보면 긴박한 일은 아닌 듯했지만, 단정하진 않기로 했다.


대신, 다른 가정을 해보았다. 혹시 엄마는 단지 내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로그인을 핑계로 전화를 걸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나 또한 엄마의 목소리가 몹시 그리웠던 요즘이었기에, 어떤 이유든 좋았다. 그냥, 서로가 서로를 한 번쯤 떠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40대가 되어도 엄마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예전보다 약간 기력이 빠진 듯한 음색이 때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나란히 나이 들어가며, 여전히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맙다.


엄마의 노년이 지루하지 않길,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모험 속에, 지금처럼 내 목소리도 자주 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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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오버플로우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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