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과장, 컨디션 안 좋으시면 무리하지 말고 쉬세요.”
“과장님, 제가 업무 대신 할게요. 좀 쉬다 오세요.”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컨디션이 서서히 나빠지더니, 오후가 되자 오한과 근육통이 본격적으로 밀려왔다. 나는 ‘요즘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몸살이 났나 보다’라고 동료들을 안심시키고 조용히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 정도쯤이야. 이 정도로 무너질 내가 아니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더 깊어졌고, 무의식 중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랍을 열고 비상약통에서 덱시부프로펜을 꺼냈다. ‘이 약 먹으면 그동안 운동한 게 다 물거품이겠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더는 힘든 기색을 내비칠 순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다. 으슬으슬한 몸 때문에 책을 펼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시계가 9시 반을 가리킬 즈음, 복통이 시작됐다. 몸은 더욱 뜨거워졌고, 근육통은 마치 이빨이 드러난 듯 맹렬해졌다. 약효가 다한 걸까 싶어 다시 한 알을 삼키고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몸 안 어딘가에서 신호가 왔다. 칼로 찌르듯 콕콕 쑤시는 복통과 함께 온몸이 덜덜 떨렸다. 보일러를 튼 듯 침대가 뜨끈했지만, 몸은 차가운 바람을 맞은 것처럼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이불을 끌어올리고 온몸을 감쌌지만 냉기가 뼛속을 파고들었다. 분명 열이 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추웠다.
순간 예전 응급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열로 실려갔을 때 의사는 내 옷을 벗기고 담요까지 걷어냈다.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턱은 덜덜거렸다. 맨몸에 물수건을 얹으며 체온이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던 그날, 체온계는 40도를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불을 걷는 게 오히려 열을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선가 들었던 단편적인 지식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이불 속에 몸을 묻고, 열이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근육통 때문인지 이불조차 쉽게 끌어올릴 수 없어 작은 움직임도 버거웠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배탈 때문에 몸이 아픈건지, 몸이 아파서 배탈이 난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몸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화장실 앞을 서성이며 새벽이 지나갔고,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듯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열은 계속 올랐고, 오후 2시에는 체온이 39도를 넘겼다.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은 없었다. 아침엔 이부프로펜, 점심엔 아세트아미노펜도 먹어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원래도 아세트아미노펜은 잘 듣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결국 덱시부프로펜을 다시 삼켰다. 속이 쓰리든 말든, 일단 열부터 잡고 싶었다.
고열 속에서 누워 있는 동안, 머릿속은 몽롱했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통증이 심할 땐 정신이 흐려졌다가, 잠시 고요해지면 다시 생각이 돌아왔다. 체감으로는 한 시간 중 20분은 견딜 수 없이 아팠고, 40분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 개인 작업 루틴이었다. 3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는데, 오늘 그 루틴이 끊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건강보다 중요한 게 어딨다고 이런 걱정을 하나.’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 순간일지도 몰랐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글을 쓰는 행위’일까, 아니면 ‘매일 글을 쓰는 루틴을 지키는 행위’일까. 단순한 습관의 반복일까, 아니면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내적 애착일까.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해온 일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형식에 불과한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덱시부프로펜이 마련해준 잠깐의 평온함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은 과연 ‘글을 쓴’ 것일까, 아니면 ‘루틴을 채운’ 것일까. 어느 쪽이든, 오늘 밤은 이 질문이 오래 머무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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