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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동 갈비 사랑

by 오제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짓거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 위로 ‘엄마’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또 뭐 도와드릴 게 있나?’ 얼마 전 명함 이미지를 줄여 달라 하신 뒤로 연락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슨 용건일까 싶었다.


“오 마이 쎄컨 썬, 건강은 좀 어때? 많이 아팠어?”


목소리 속 걱정이 먼저 전해졌다. ‘아, 안부 전화였구나.’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 있어서, 엄마의 전속 AS 기사 노릇을 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의사 선생님보다 더 꼼꼼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뭘 먹었는지,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팠는지, 탈 나면 뭘 먹어야 하는지.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아낌없이 퍼주셨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듯 말하고 난 뒤, 엄마는 내가 본래 목적을 꺼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 아빠랑 밥 먹을까? 맛있는 거 먹으러 데려가고 싶은데.”


이 제안을 몇 번이나 거절했는지 모르겠다. 거의 매달 한 번씩, 때로는 몇 주 간격으로도 물으신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다시 물으신다. 아마 내가 아팠던 터라 영양 보충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해진 것 같다.



나는 학교에 가기 전까지 포천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포천 이동갈비’를 유독 좋아하신다. 무슨 일만 있으면 이동갈비를 가자고 하신다. 물가에 발을 담그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며 그 매력을 설명하지만, 정작 나와 갔을 때는 물에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이 사주시는 식사이니 어디를 가든 부모님 뜻을 따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동갈비가 내키지 않았다. 그 정도 식대라면 더 새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싫은 내색을 했더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플랜 B’를 꺼냈다. 고양시에 있는 ‘강강술래’, 역시 갈빗집이었다.


아무래도 부모님은 갈비를 아주 사랑하시거나, 내가 갈비를 좋아한다고 믿으시는 것 같았다. 사실 어릴 적, ‘뭐 먹고 싶니?’라는 질문엔 주저 없이 ‘갈비!’라고 외쳤다. 엄마가 해주실 수 있는 요리 중 갈비찜이 제일 맛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엄마가 치킨이나 피자를 잘 하셨다면, 나의 대답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에겐 ‘맛있는 음식’이 곧 ‘갈비’였고, 그 기억이 부모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건 굽는 갈비가 아니라, 솥에서 푹 삶아낸 갈비찜이었다.



나는 고기를 구워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구워서 반찬으로 나오는 건 괜찮지만, 직접 굽고, 먹고, 기름때를 치우는 모든 과정이 번거롭다. 그 수고를 감내할 만큼 압도적인 맛인가 하면, 솔직히 그렇지도 않다. 구워 먹는 고기 중에서 햄버거 패티보다 맛있다고 느낀 경우가 드물고, 소고기 특유의 향이나 붉은 고기의 비린내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회사에서 고기 회식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메뉴가 삼겹살이나 소고기로 정해진 날이면 반차를 내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게다가 술도 안 마시니, 초록병이 오가는 고깃집 회식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취향 차이도 한몫한다. 나는 고기가 더 이상 빠질 기름이 없을 때까지 바싹 구워 바삭한 식감을 좋아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익혀 탱글탱글한 식감을 즐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굽기를 기다리다 보면 불판 위 고기를 모두 빼앗기기 일쑤다. 따로 굽자니 여간 민망스러운 일이다.



이동 갈빗집도 비슷하다. 처음 몇 번만 직원이 구워주고 나머지는 손님이 해야 한다. 부모님은 그 집 고기가 제일 부드럽고 간이 잘 맞는다며 고집하신다.


결국 이번 식사는 피할 수 없겠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미뤄왔지만, 부모님께서 자식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으시면 이토록 재촉하실까 싶다. 이번 주말, 어디든 기쁘게 가서 맛있게 즐기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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