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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by 오제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작년 봄, 퇴사 후 동남아로 떠났던 마리아 님이었다. 집안 사업을 돕기 위해 과감하게 떠났던 그녀는 목표한 1년을 잘 채우고 무사히 돌아왔다. 어디 다친 데 하나 없이,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표정은 밝고 눈빛도 또렷했다. 원래도 굳센 사람이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더 단단해져 돌아온 느낌이었다.


마리아 님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함께 만들었던 프로젝트, 운영하며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수많은 고민을 나누며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조용히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퇴사하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시간이 야속하다 못해, 놀랍기까지 했다.



회사에서 떠난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면, 사무실 공기는 미묘하게 바뀐다. 떠나간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있거나, 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있기에, 어디까지나 약간은 어색하고 민망한 분위기가 흐른다. 그래서 첫 방문은 보통 사무실로, 이후부터는 대표님 방이나 근처 카페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조용히 모인다.


이번에도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가까웠던 사람들만 모여 담소를 나눴다. 그녀의 지난 1년을 속속들이 캐물을 순 없었지만,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먹으며 지냈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 기자회견이라도 열린 듯, 타지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이 쏟아졌고,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말을 참 많이 했다. 그만큼 마리아 님은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이었고, 또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들고났지만, 수시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없었다. 간간이 안부를 묻거나 반가운 소식을 전하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런 연락도 점점 소원해진다. 특별한 애정이 있지 않는 한, 그런 관계를 오래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성별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성별이 같은 동료와도 결국은 연락이 끊기게 되는 걸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하다.


회사 동료는 그저 회사 동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일과 삶을 분리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사랑하고, 출근하는 걸 즐기는 사람조차도 그런 마음을 품곤 한다. 회사는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동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사람에게 많이 데여본 이들일수록, 그 경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고 싶다. 떠올려보면, 내가 연락이 끊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 한 동료가 내게 말했다. “나중에 과장님이 별장 사면 놀러 가서 고기 구워 먹을 거예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찡해졌다. ‘우리 회사에서도 나를 퇴사 이후까지 떠올려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가끔은 다른 동료들이 ‘언젠가 내가 차린 회사로 이직하겠다.’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고, 온몸에 힘이 팍 들어간다. 나를 믿고 기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감각은 나에게 큰 동력이 되어준다.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생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은 회사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회사 동료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니까. 함께 기쁘고, 함께 아프고, 때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다투기도 했던, 바로 그런 사람들.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선을 긋고 퇴근 이후에는 남남처럼 지내는 건 왠지 재미없다.


앞으로 독립하게 된다 해도, 전 동료들과 종종 만나고 싶다. 아니면 멀리서라도 조용히 응원하며,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오래도록 지켜가고 싶다. 굳이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 따뜻한 자리 하나를 남겨둘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게 함께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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