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살아가는 사람들

Aug 14. 2025

다른 사람들은 퇴근 후 어떤 저녁을 보낼까. 친구를 만나거나, 동료들과 회식을 하기도 하고, 공연장이나 맛집을 찾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하루의 외부 일정이 모두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또 무슨 풍경이 펼쳐질까. 긴 밤의 시작, 다들 어떤 취미를 품고, 어떤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스포츠 중계를 틀어놓고 소리 없는 응원을 하거나, 주식이나 코인을 분석하고 있을까. 아니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마음의 틈을 채우고 있을까. 요즘처럼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과연 어떤 재미로 하루를 마무리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밤은 비교적 일정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과 발을 씻고, 아내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식탁에 놓인 음식에는 언제나 아내의 손길이 담겨 있고, 우리는 그 위에 하루의 풍경을 조각조각 꺼내 나눈다. 이야깃거리는 주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요즘 자주 떠오르는 생각들 같은 것이다. 별거 아닌 이야기일지라도,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이면, 식사 후 대화는 한 시간 남짓 이어진다. 매일 보는 사이인데도, 늘 할 이야기는 많다.

대화를 마치고 식탁을 정리한 뒤, 나는 샤워를 한다. 하루를 완전히 정리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샤워만큼은 거르지 않는다. 물줄기를 따라 몸의 피로가 흘러내리고, 정신도 맑아진다. 신기하게도 샤워 후엔 다시 기운이 조금씩 차오른다. 무언가 거창한 일을 할 만큼은 아니지만, 두어 시간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생긴다. 나는 그 힘으로 글을 쓰거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시간. 하루 중 가장 밀도 높고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퇴근 후의 시간은 유독 빨리 흘러간다. 조금만 빈둥거리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 된다.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개인 시간 동안 아무 의미 없는 일들만 가득한 날엔 특히 그렇다. 유튜브는 괜찮은데, 짧은 영상이나 쇼핑몰 탐색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날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날이면 괜히 나 자신이 가엾어진다.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는 자책, 그 찝찝한 후회감이 나를 눌러 앉힌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 아래, 이런 감정과 행동이 이미 분류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내 감정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섣불리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자각한다.

나는 하루를 100% 전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늘 최선을 다하며 살 순 없다. 집중한 만큼은 쉬어야 하고, 일한 만큼은 놀아야 한다. 그런데 그 ‘노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나는 아직도 종종 막막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정작 그 시간들이 내 안에 진짜 쉼으로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 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자꾸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