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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으로 일하는 이유

by 오제이


나는 기업 웹사이트 제작 일을 하고 있다. 주요 업무는 디자이너가 만든 이미지를 코드로 바꿔 모니터 속 화면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누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으레 “코딩합니다”라고 답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개발자’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한 달 동안 세 번의 면접 끝에 입사한 회사는 예상보다 허술했다. 입사 과정에서 보였던 그 당당한 프라이드와 노련한 업무 노하우는 겉모습에 불과했고, 막상 들어와 보니 그 안은 허점 투성이였다.


내가 배정된 곳은 신설 사업부였다. 입사 전까지 이 부서는 제대로 된 사이트 구축 경험도, 쓸 만한 포트폴리오도 없었다. 몇 번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웹사이트를 만든 건 내가 들어온 뒤가 처음이었다.


황당한 일은 차고 넘쳤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사수 없이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GPT 같은 도구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그저 포털 검색과 개발자 커뮤니티가 유일한 배움터였다. 입사 이튿날부터 바로 운영 업무에 투입됐는데, 초보였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얼어붙는 순간을 겪었다.



한 번은 판교로 출장을 가 서버실에서 직접 코드를 수정한 적이 있다. 전국망으로 서비스되는 프로젝트였는데, 시골의 한 대리점에서 화면이 깨져 보인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버실에 직접 들어가야 했다. 보안은 상상 이상이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개인 기기는 반입 금지, 인터넷은 차단, 제공된 컴퓨터에는 코딩용 프로그램조차 없었다. 결국 ‘메모장 코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막히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해결책을 노트에 받아 적고, 다시 들어가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원인은 구형 컴퓨터와 구형 윈도우, 그리고 믿기 힘들 만큼 오래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8 이었다. 최신 코드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기능이, 구 버전에서는 어김없이 오류를 냈다. 나는 익스플로러 9까지만 대비했었기에, 8버전을 실제 업무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사건 이후, 우리 회사는 서비스 환경을 더욱 보수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전국망 대기업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 어떤 구형 단말기로 접속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최신 코드를 쓸 기회는 점점 줄었다. 혹시 모를 구버전 사용자에 대비하느라, 코드 한 줄이면 될 일을 열 줄로 쓰는 날이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편리한 기술이 쏟아졌지만,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최신 코드를 써보고 싶었다. 회사에서 시키지 않은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회의실 예약 시스템, 코로나 시기 QR 체크인 앱, 재택근무 출퇴근 기록 앱, 날씨 앱, 업무 효율을 높이는 테스트 프로그램까지.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한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건 최신 코드를 써보기 위한 나만의 실험장일 뿐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흐른 어느 날, 다른 사업부 팀장이 와서 웹사이트 구축 시스템에 대해 묻더니 말했다. “와~ 이 확장자를 아직도 못 써요? 그런 PC가 아직도 존재하긴 해요? 대체 어디까지 보수적으로 가시려는 거죠?”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은근한 빈정거림이 섞여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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