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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좋은 시절, 허나 떠나야 할 때

by 오제이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해도 우리 프로젝트는 꽤 보수적이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 굳이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작업할 필요는 없었지만, 괜한 노파심에 우리는 여전히 옛 방식을 고수했다. 수많은 웹페이지를 운영하면서 큰 기술적 결함을 겪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종종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졌고, 클라이언트의 문의가 들어올 때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오래된 컴퓨터였다. 전 국민 서비스라지만, 20년 전 운영체제까지 호환성을 맞춰야 했던 건 솔직히 가혹했다.


그런데 변화가 더딜 것 같던 인터넷 브라우저 생태계에도 어느 순간 거센 물결이 밀려왔다. 2022년 6월 15일, 온갖 저주와 멸시를 받던 인터넷 익스플로러(IE)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IE의 무덤까지 만들어 기념했고, 세상은 마치 악의 무리를 몰아낸 듯 떠들썩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전후로 다양한 브라우저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기존 브라우저들도 앞다퉈 표준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 영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평생 e 모양 아이콘만 눌러야 인터넷이 열린다고 믿던 우리 어머니조차, 이제는 크롬이나 웨일을 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나에게 2022년 6월 15일은 작은 혁명의 날이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익스플로러 때문에 안 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건 곧 내가 만드는 웹페이지가 더 빠르고, 유려하고,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전에는 쓰기 힘들었던 코드들을 이제는 마음껏 쓸 수 있었고, 억눌렸던 창의력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내 작업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덕분에 개인적인 여유 시간이 늘었고, 그 시간은 다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쓰였다. 개인 프로젝트를 시도하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발판도 마련됐다. 게다가 GPT나 코파일럿 같은 어시스턴트 프로그램이 등장해 작업은 한층 수월하고 정교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꿈꿨던 코딩 환경이 마련됐다. 수년간의 고생 끝에 쓰고 싶은 코드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0년 전에는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던 미래가 눈앞에 도래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 이 일을 그만두려 한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꿈꾸고 있다.



10년의 기다림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걸까.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나의 미래를 날아오르게 할 날개가 될지, 아니면 그저 지금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만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분명 내 시간과 노고는 어떤 식으로든 밑거름이 되겠지만, 마음 한편에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분야에서 일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누가 자신의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겠는가.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어떤 꿈을 꿀지 몰랐다. 그 시절 아무리 분명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그것이 언제, 어떤 이유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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