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습관처럼 그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는다. 마음 편히 환경 탓이나 외부 요인 탓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잘되지 않는 성격이다. 잘 되든 잘못되든 모든 결과는 결국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건 분명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일 테지만, 때로는 나를 압박하고 움츠리게 만드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굳이 자책할 필요까지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책임’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라 마음을 저미게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 스스로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모처럼 일을 내려놓고 있다. 아프다는 핑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됐다. 마침 1년 가까이 이어오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그 틈새로 내 게으름과 태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새로운 달의 절반이 지나 있다. 외면해오던 일을 다시 바라보니, 진척 없는 시간만 흘려보낸 듯해 조바심이 서서히 깃든다.
어제는 그 조바심이 절정에 이르렀다.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던지, 배탈로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할 때조차 그 시간이 아까워 메모지를 꺼내 일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이 더 잘 풀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불안해서 그랬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일을 잊고 살 것만 같아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할 거야’ 같은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런 말은 부정탄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이란 건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 ‘이제 그걸 하겠다’고 굳이 선언하는 건 마치 하기 어려운 일을 말로라도 위로받으려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 나는 언젠가 밥을 먹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굳이 말로 포부를 내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버릇처럼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입 밖에 내놓는다. 어쩌면 나는 아직 두려운가 보다. 그 일을 해낼 내 능력을 의심하고, 실패했을 때의 낙담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의심을 만들었고, 그 기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오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정에 집중하라’는 흔하디흔한 문장이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어떻게 하면 이 마음속 무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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