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과장님, 어제 그 자료요. 클라이언트가 또 수정해달라는데 봐 주실 수 있나요?”
“팀장님, 그건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하면 되는데 놓치신 것 같네요. 지난 대화 기록에서 OO 검색해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런 게 있었나요? 저는 참 클라이언트 복도 없어요. 왜 자꾸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지...”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지독하리만치 업무 감각이 없는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고, 그마저도 금세 잊어버려 다시 설명해 줘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새로운 걸 알게 됐으면 어딘가에 메모라도 해두면 좋으련만, 그들은 기어이 머리로만 기억하려 한다. 매번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그 답답함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그까짓 거 그냥 알려주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하루 이틀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매일같이 앵무새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짜증이 차오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일의 담당자인지, 그 사람이 담당자인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후배가 이런 유형이라면, 나는 우선 조용히 타이르고 교육하는 쪽을 택한다. 개선 방법을 고민하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시도에도 변화가 없다면, 조심스레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때론 단호하게, 때론 부드럽게. 그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할 만큼 했다’는 위안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클라이언트거나, 다른 팀의 동료, 혹은 선배일 때다.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기에,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고 변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대화 중 슬쩍 힌트를 주기도 하지만, 대개 이런 사람은 눈치가 없거나, 눈치가 있어도 모른 척한다. 심지어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만만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무능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요즘 특히 나를 지치게 하는 건 ‘책임 전가형 질문’이다. 정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책임지기 싫어 상대에게 묻는 유형. 그들은 자기 생각을 꺼내놓지 않고, 내 대답을 다 들은 뒤에야 “그래, 나도 그럴 것 같았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시험당한 기분이 들고, 엉뚱한 데다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속이 상한다. 차라리 질문 전에 어디까지 생각해 봤는지, 무엇이 막히는지를 알려주면 좋으련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게 바로 무능의 본질일 테다.
어제와 오늘, 이런 사람들을 연이어 만난 탓에 마음이 무겁다. 꼭 나와 잘 맞는 동료나 클라이언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예의를 지키고, 상대의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는 성의가 있었으면 한다. 그 최소한의 성의만으로도, 일은 훨씬 덜 피곤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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