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요즘 영화는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 결국 네 시간을 꼼짝없이 TV 앞에서 보낸 셈이다. 하루 일과 시간에서 취침과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는 건 열네 시간 남짓인데, 그중 30%를 영화에 쏟아버렸다.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었고, 기대만큼 재미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은 아마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것이다. 왜 미디어를 즐긴 시간이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까.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정확히 말해 성장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오락거리를 즐기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나는 그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마음속 안개를 걷어내면 그 자리에 텅 빈 공간이 드러날 텐데, 나는 그 공허를 채울 힘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채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바빠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수많은 실패를 겪게 될 게 뻔하니까. 나는 두려움 속에서 마음의 안개에 몸을 숨겼다. 오늘도 움츠린 채, 사시나무 떨듯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2년 전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은, 혹은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생겨난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어쩌면 이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나는 오래된 글들을 뒤적였다. 2년 전 내가 써 내려간 기록들을 읽으며, 그때 하루를 어떻게 살아갔는지 다시 들여다봤다. 눈을 부릅뜨고 차이를 찾아내려 애쓰다 보니,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미련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 덕에 지금의 부지런함이 몸에 밴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는 무대뽀 정신이 내 기상 시간을 바꾸고, 하루의 루틴을 만들고, 책 읽기와 일하기, 운동과 내 사업에 투자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늘 빛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러운 날이 많았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좋지 않은 행동들을 허용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잠시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았다. 기분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졌기에 제한 없이 받아들였다. 내 의지로 언제든 조절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존재감을 키워갔다. 하루의 1~2분을 잠식하더니 점차 더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그로 인한 도파민 중독과 정서적 피폐를 알면서도, 나는 거부하기 힘들었다. 일시적인 쾌락과 편안함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그것들은 내 마음과 이성을 잠식했고, 그 빈자리에 무기력과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번식했다. 그 결과, 내 열정과 이성적 판단은 설자리를 잃고 서서히 사그라졌다.
오늘 나는 그 문제를 뿌리 뽑기로 했다. 내 삶을 좀먹고 있는 것들, 나를 중독에 빠뜨린 것들과 전쟁을 선포했다. 점점 늘어난 습관들을 단숨에 끊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만 했다. 이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잘못 들어온 것을 다시 내보내겠다는 의지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처방을 내렸고, 곧장 치료를 시작했다. 내게는 자정 능력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힘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바닥을 친 만큼, 더 높이 솟구칠 수 있기를. 최근의 고민들이, 이 싸움 끝에 더 큰 기회로 돌아오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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