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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쓸 수록 커진다

by 오제이


우리 회사에는 ‘월간 회의’라는 명목 아래, 한 달에 한 번씩 공식적으로 모여 2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날이 있다. 마냥 잡담만 하는 건 아니고, 추첨으로 정해진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달의 주제는 재테크였다.


“OO 님은 살면서 가장 큰돈을 써본 게 언제인가요?”

내가 막내 사원에게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꽤 오래 고민했지만,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마 50만 원 정도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건 부모님이 사주셨고,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네요.”

“그럼 앞으로 그 금액보다 큰 지출 계획은 있어요?”

“음… 다음에 스마트폰 바꿀 때? 그 외엔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제 생각엔 돈은 써본 만큼 버는 금액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돈을 다루는 그릇이 커진다고 해야 하나.”


그 대화를 계기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해왔고, 나의 ‘돈 그릇’은 얼마나 컸을까. 내가 목돈이라고 부르는 금액의 단위가 곧 나의 돈 그릇 지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는 10만 원단위, 대학생 때는 100만 원단위,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천만 원단위로 커졌다.



고등학생 시절, 목돈이란 주로 신발이나 가방, 혹은 휴대전화를 바꿀 때 필요했다. 당시엔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으니, 지출을 줄여서 잉여금을 만드는 전략을 썼다. 15만 원짜리 신발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지 않고 한 시간씩 걸어 다니며 교통비를 모았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간을 책 읽기에 썼다면 더 좋았을까? 뒤늦게 아쉬움이 남지만, 그땐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대학생 때 가장 큰 지출은 등록금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밤낮으로 움직였다. 밤에는 음식점, 낮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등록금을 내고 나면 남는 건 얼마 없었고, 생활비도 빠듯했다. 젊은 시절의 낭만이라 하기엔 다소 가혹한 시간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버는 돈이 늘자 씀씀이도 함께 커졌다. 결혼 비용, 집 보증금, 자동차 구입비 등 목돈을 결제할 일이 잦아졌다. 수입이 열 배 늘지 않았는데, 지출 단위는 열 배로 커졌다.


그런 시절을 겪으며 배운 점이 하나 있다. 큰돈을 써보면 그 금액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어릴 적엔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낼 때도 손이 떨렸다. 그리고 100만 원, 1,000만 원. 그 단위가 커질 때마다 첫 순간엔 늘 같은 떨림이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지출이 반복될수록 떨림은 줄고, 점차 당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돈 그릇이 커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돈 그릇이 커지면 떨림이 줄어들어 이성적 판단력이 높아진다. 그렇게 더 큰돈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레 더 큰 기회와 수익을 보는 눈도 생긴다.



나는 욕심이 많다. 지금보다 더 큰돈을 다루고 싶다. 1,000만 원단위, 억 단위의 거래에서도 손이 떨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선 수입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 하는 일로는 더 이상 돈 그릇을 키우기 어렵다.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하고, 더 큰 금액이 오가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직은 막연하다. 하지만 20대의 나도 처음엔 막연했다. 그래도 버텼고, 헤쳐 나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모른다. 섣불리 겁먹고 멈추지 말자. 계속 모험하고 투자하며, 나의 운신 폭을 넓히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은 더 커져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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