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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젊음

by 오제이

지난 연휴,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에서 <아델라인>이라는 영화를 봤다. 내가 영화관에 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터라, 우리는 대부분 집에서 OTT를 통해 영화를 본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최신 영화에 대한 정보는 무딘 편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게 지난 <조커 2>를 관람할 때였으니 어림잡아 1년도 더 된 것 같다.


집에서 영화를 보면 좋은 점은 여러 가진데 가장 큰 장점은 마음껏 떠들어도 된다는 점이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리액션이 큰 편이다. 아내는 주로 놀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나는 주로 감탄하는 부분을 도맡는다. 이것들을 영화관에서는 참는 일은 꽤나 큰 고통. 리액션 없이 영화를 보는 건, 참기름 없이 비빔밥을 먹는 것처럼 퍽퍽하고 밍밍하다.


그리고 집에서 영화를 볼 때, 또 다른 장점은 좌석이다. 두 발을 마음껏 뻗고 등허리는 겹겹이 쌓은 쿠션에 비스듬히 기댄 채 보는 영화는 퍼스트 클래스의 편안함에 못지않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는 타본 적 없지만.) 게다가 등골이 오싹한 장면에서는 이불을 둘러 멜 수도 있고, 짜릿한 장면에서는 힘껏 발길질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관객에 최적화된 극장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무엇이든 원하는 스낵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언제든 일시 정지 후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는 점도 안방극장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우리는 오늘도 이 모든 이점을 총동원해 영화를 관람했다.



<아델라인>은 기이한 일을 계기로 늙지 않게 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SF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인 사랑이 섞인 로제 청국장(청국장 쪽이 호이다.) 같은 영화이다. 만약 넷플릭스 썸네일에서 만났더라면 예고도 보지 않고 넘겼을 영화. 하지만 인스타그램 영화보관소의 추천 작품이라 하니 나의 귀한 두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믿음이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무척 재밌었다. 인생 영화로 꼽을 만큼 마음에 남는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영화였다. 나는 영화 관람을 마친 후, 영화의 중심 주제인 ‘영원한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영화 속 주인공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젊음을 유지한 채 살았고, 그 긴 삶 속에서 다양한 지식과 부를 축적했다. 영화에서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그토록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 자세히 묘사하진 않지만, 100년이라는 꽤 넉넉한 시간을 살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 정도쯤은 모으지 않겠냐는 생각은 SF 영화적 관점에서도 꽤나 보편적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도 이어진다. 내가 만약 100년을 산다면 그 정도 재화를 모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처럼 어딘가에 적절히 투자하고 오래 버티기만 한다면 괜찮은 수익을 얻게 될까? 그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지식도 축적될까? 이런 질문은 지식과 재산이 시간과 비례하는 가로 귀결되는데, 나의 대답은 그렇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로 해두고 싶다.


나는 오랜 시간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내본 적도 있고, 짧은 기간 동안 높이 성장해 본 적도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관망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도 매력은 있었고, 새로운 지식을 탐독하며 세상에 나의 가치를 더해나가는 삶도 즐겁기 그지없었다. 이 두 가지 삶은 모두 시간이라는 같은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서로 다른 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므로 시간은 단지 불꽃같은 인생에 불을 점화하기 위한 부싯깃일 뿐, 그 양이 많고 적음이 완전한 결과의 차이를 창출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제아무리 사용하기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엄격한 진실이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모여들듯, 시간 역시 그것을 아끼고 소중히 대할 줄 알아는 사람이 결국 그 시간을 통해 유용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시간을 아껴 쓰라.” 그 말은 100년간 늙지 않은 이에게도, 40년간 부지런히 나이 든 이에게도, 모두 마음 깊이 새겨두고 지켜야 할 불변의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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