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9
2학년이 되자 아들의 학교생활은 조금 나아졌다. 1학년이 기초를 다지고 학교에 적응하는 시기라면, 2학년은 말 그대로 학교가 내세운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이끄는 세계인이 되는'길에 좀 더 다가가는 수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초를 다지는 1학년에 이미 기초를 다지고 온 다른 아이들과 두드러지게 비교가 되었던 아들은, 각종 토론과 정책 동아리활동을 비롯해 모두가 새롭게 시작하는 과목에선 뒤처지지 않았다. 처음 배우는 러시아어나 국제법과 정치 계통의 사회 과목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되던 찰나에 아들은 또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학생회장단 선거에 나가려고 해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와 긴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 대의원 선거, 즉 반장 선거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던가. 이제 조금 살만한가 싶었는데, 그 괴로운 일을 판을 더 크게 벌려 또 겪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아파왔다.
나는 아들이 선거를 치르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유세를 도운 아이들이 누구였는지,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공약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얼른 지나가기를, 최대한 덜 상처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교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아들의 말이,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결선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더 정확히는 후보가 많아 1차엔 표가 나뉘었지만 정작 결선에서는 아들의 우세가 뚜렷했다고 한다. 나는 아들에게 축하한다며 엄지를 세워 보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죽여 울.었.다.
내가 '특목고'란 이름에 주눅 들어 있는 동안 아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안간힘은 너무 작고 미약하여 마치 미동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한 겹 한 겹으로 아무도 모르는 탑을 쌓고 있었다. 다른 후보들이 '선거포스터'하면 떠오르는 딱 그런 포스터를 만들 때, 아들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공개했다. 자기를 앞세운 많은 친구들이 지지를 보내는 사진 위로 아들의 공약이 적혀있고, 아래에는 자신의 이름 옆에 학교의 영문명과 나란히 전성시대가 붙어있는 포스터였다. 아들의 포스터를 본 순간 가능성을 보았고, 연설을 들으면서 당선을 생각했다는 선생님들의 말은 나중에 전해 들었다.
아들은 학생회 간부 모임인 리더십 캠프를 작년엔 유일한 일반학생으로 지원해서, 이번엔 전교학생회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상위권 아이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정책연구동아리에서 자문위원장이 되었다. 또 EBS프로그램 장학퀴즈가 50주년을 기념해 전국 고등학생 50명 만을 선발해 마지막 1인을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젝트에 출연한 아들은, 50인은 물론 최후 본선까지 진출하는 드라마틱한 일도 이뤄냈다. 같은 해 영국 옥스퍼드 해외연수를 다녀왔고, 대만 청춘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하얀 여자친구와 연애도 시작했다. 아들은 조용하고 담대하게 자신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었다.
오후엔 투본강 투어를 했다. 우리는 여전히 아오자이를 입은 채였다. 3학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입시준비가 시작되었고, 아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세부사항에는 그간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아들이 걸어온 노력의 시간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차례차례 읽었다. 활자들이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선생님들이 아들의 수고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문장마다 더할 수 없는 애정이 배어있었다.
뱃사공은 포토스폿마다 노를 멈추고 배를 세웠다. 아들과 나는 하트모양 프레임에 서서 베트남 모자와 아오자이 차림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더없이 촌스러운 모양새였지만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들은 원서를 낸 대학 중 4곳에 합격했고, 모두 최초합격이었다. 아들은 정말, 독립을 하게 되었다. 분홍빛 석양이 아래로 내려와 강을 물들였다. 우리의 호이안은 진짜 이별여행이 되었다.
약속한 대로 호텔 로비에 아오자이를 맡기며 가게 주인에게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 이렇게 큰 아들과 커플로 아오자이를 입는 손님은 처음 본다며, 부디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어린 딸과 함께 있던 그녀의 말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너무 아름답고 진심으로 즐거워 보여 자신까지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짐을 싸며, 그간 아들과 내 방을 청소해 준 분들께도 약간의 돈을 남겼다. 5일을 머무는 동안 그들과 자주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둔 마스크팩도 침대 위에 두었다. 외국에서 한국 마스크팩의 인기가 높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우리는 오늘 이곳을 떠나요. 당신들의 수고 덕분에 나의 여행은 무척 편안하고 행복했어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호텔로비에서 간밤 냉장고에서 꺼내 먹은 맥주값을 치르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새벽비행기라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막 출발하는데, 호텔의 남자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와 택시 창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뭔가 잘못된 줄 알고 급히 차를 세웠다. 사정은 이랬다. 나의 메모를 확인한 메이드가 방 창밖으로 내가 탄 택시는 떠나는 것을 보았고, 급하게 입구의 직원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녀가 남자 직원에게 꼭 전해 달라고 한 말은 "나도 고마웠어요."였다.
택시는 아들과 내가 늘 걷던 길을 한걸음에 내달렸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풍경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나는 다정하고 감미로운 어떤 기분에 휩싸였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아들이 그런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만약에요. 만약에 말이에요. 제가 대학원을 D시에서 다녀도, 집을 나가야 해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들'은 영원히 '엄마'를 '놓지' 못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엄마는 아들을 키우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순간을 만난다. 그러한 엄마의 애끓는 모정은 자라나는 아들의 핏속을 돌고 돌아 세포하나하나를 길러낸다. 엄마가 이룩해 낸 세포로 자란 아들은, 온몸에 각인된 엄마를 절대로 놓을 수가 없다. 아들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오롯이 성장하기 위해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엄마라는 사실을 나는 벼락 맞듯 깨달았다.
나는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을 뻗어 귀하고 소중한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오래오래 아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린 아들을 품으며 내가 진짜 엄마가 되었듯, 지금은 아들을 떠남으로써 다시 한번 엄마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들의 물음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투둑, 아들과 나를 한 몸처럼 묶고 있던 마음의 탯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