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6
루시 쿡의 『암컷들』을 읽고 - 고등학교 때 내 친구는, 아빠가 바람피운 얘기를 엄마가 아무에게나 하고 다녀서 창피해 죽겠다고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꼭 친구의 엄마가 아니어도, 남편이나 누구 아빠의 바람은 세간에 흔한 스토리다. 그러나 여자의 바람에 대해서는 나는 거의 들어본 바가 없다. 들었다 해도 남자에 비하면 아주 미약하다. 나는 늘 궁금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자들은, 누구와 바람을 피운 걸까?
루시 쿡의 『암컷들』은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다. 나아가 남자들이 진짜로 바람을 ‘핀’것이 맞기나 한지, 혹시 ‘핌을 당한’것은 아닌지, 당해놓고 ‘당한 지도 모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찰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망토개코원숭이'와‘보노보’다. 망토개코원숭이는 ‘수컷들이 모여서 약 10~20 마리의 암컷으로 된 하렘을 유지하는데 수컷은 사춘기도 되지 않은 어린 암컷을 가족으로부터 납치하는 혐오스러운 행위를 자행한다. 붙잡혀온 어린 암컷은 첫날부터 상습적인 가정 폭력을 당하며 포획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적응한다’(p328) 저자도 언급했듯, 여기에 인간 사회와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 우리의 결혼제도가 바로 그렇다. 여자가 자기의 가족을 떠나 남자의 가족에 속해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인간적, 즉 짐승적 행태인지를 보여준다.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원과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여자들이 고립되고 억압받았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옛말에 ‘겉보리가 서말이면 처가살이 안 한다’는 말은, 이미 남자들도 그것의 부당함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 다른 결로 ‘보노보’가 인상적인 것도 그것이다. 보노보 또한 망토개코원숭이처럼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평화롭다. 그 비결이 암컷이 수컷은 물론 암컷까지, 심지어 자식과도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이유라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성을 억압하지 않고 그것에 자유를 주면 세상 범죄의 70퍼센트가 줄어들 것이다.’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은 자료와 사례의 양이 방대해서 어떤 예로 암컷들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난감할 정도다. 그러나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암컷은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그렇게 보일 때조차도.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암컷에 대한 이미지는, 그게 무엇이든 상당 부분 남성 우월적 시선에 갇힌 채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것이고, 그것을 전복시킬 만한 놀라운 발견이 쏟아져도 애써 무시해 왔다는 얘기다. 왜? 남자에게 불리하니까. 남자는 사실 많이 지질하고, 그것을 들키기 싫으니까.
우리는 흔히 그게‘과학적’ 혹은 ‘객관적’이라고 하면, 더 이상 토론이 불가능할 만큼 그것을 깊게 신뢰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종교처럼 믿어왔던 이론들이, 남성 우월적 시선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