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

아빠가 갇혀버린 세상

by 민진


나이드는 것이 비극적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젊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아빠가 갇혀버린 세상


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너무 기뻐 어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얼마 만에 느껴본 뿌듯함인지, 온 몸에 기운이 넘치는 기분이다. 오늘 가는 곳에서 훈련만 잘 받으면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염색도 하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씻고 옷도 가장 깔끔한 것으로 입었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해도 아직 6시도 안됐다. 9시까지 가면 된다니 세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초조하고 답답하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싶지만, 큰놈이 와서 데리고 간다고 하니, 기다려야겠지.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아들이 조심스럽다. 민진이가 왔으면 편하겠는데, 바쁘다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취직을 하게 됐다고 하니, 어제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사가지고 왔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다. 돈을 벌어, 민진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집도 하나 사주고 싶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좀 일찍 오지 시간 딱 맞춰오려는 걸까…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


8시30분이 되어도 아들이 안 온다. 좀 더 기다려보라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집 밖 주차장으로 나왔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운전 중인지 받지 않는다. 첫날부터 지각하면 안 되는데... 그냥 내가 먼저 갈까 싶어서 돌아서는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아들의 차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차를 세워 서둘러 올라타고, 출발을 재촉하는데, 마누라가 뒤늦게 쫒아 나온다. 자기가 취직하는 것도 아닌데, 화장에 꽃단장까지 하고 나온다. 누가 봐줄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 이 나이에 취직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여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늦장이다.


직장은 차로 5분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걸어 올 걸 그랬다. 난 서둘러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갔다. 다들 친절하게 나를 맞이해준다.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환대해 주는데, 뿌듯해지고 어깨가 쫙 펴지는 기분이었다.


한창 잘나갈 때 돈도 잘 벌고, 다들 “백사장”하면서 반기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땐 세상이 만만해 보이고 무엇을 하든 자신 있었다. 평생 그렇게 잘 나갈 줄 알았다. 이렇게 초라하게 늙어갈 줄 몰랐다. 돈 없다고 사람들한테 무시당할까 봐 사람들 만나기도 싫었고,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취직도 시켜준다면서 이렇게 사람을 친절하게 대접해주니, 기분이 좋아져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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