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고 뭐고 다 필요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럼 그렇지 웬일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나 싶었다. 살다 보니 남이 나에게 잘 해줄 때는 반드시 무언가 이유가 있었다. 돈을 빌린다는 지, 보증을 서달라고 한다든지, 나에게 얻을 것도 없는데 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난 건설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낳아 키우며 잘 살아왔다. 중간에 하던 일이 잘 안돼서 고생은 좀 했지만, 그래도 내가 다 늙은 노인네들하고 같이 색칠 공부나 하고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곳은 이렇게 늙은 노인네들을 모아놓고 뭐 하려고 하는 걸까.
아까부터 계속 어르신, 어르신하고 부르면서 색칠이나 하라 그러고, 단어 맞추기나 하라 그러고 이상하다. 취직 훈련을 시켜준다는데 이런 것을 해서 도대체 어디에 취직을 한단 말인가. 아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계약서를 쓰고 돈도 입금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곳은 취업을 시켜주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미끼로 노인네들 주머니, 아니 그 자식들의 주머니나 털어가는 사기 집단인 것 같다.
도대체 얘들은 뭘 어떻게 알아보고 이런 사람들에게 속은 것 일까. 다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애들인데, 아무리 나이 먹어도 자식들은 여전히 애들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룬 나에게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처럼 걱정된다. 난 취직을 하러 가야 해서 여기에 더는 있을 수가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몇몇 젊은이들이 나를 막아보려 했지만,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난 막아서는 젊은이들의 팔을 뿌리치고, 거칠게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나를 가둬 둘 생각이었나 본데 어림도 없다.
나 하나도 부족해 내 자식들까지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져 다리까지 후들거린다. 난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자식들이야 세상 물정 모르고 그렇다 쳐도, 마누라는 도대체 뭐 하는 여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마누라의 농간임에 틀림없다. 생각해보면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내가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했을 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술로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그런데 그 여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밤에 잠만 잘 잤다. 내가 깨우기라도 하면, 사람 잠도 못 자게 한다면서 짜증 내곤 했었다. 사기꾼과의 소송에서 패소하고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을 때, 난 밥 한술 뜰 수가 없었다. 내가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자, 마누라는 자기는 살겠다면서 밥만 잘 먹던 그런 여자였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내가 늙고 기운이 없어질 때를 기다린 것 같다. 내가 힘이 없어졌을 때, 나를 저런 곳에 처박아두고 그 놈하고 내 돈을 가지고 희희낙락하며 살려고 했음에 틀림없다. 마누라에게 뒤통수 맞은 줄도 모르고, 참 바보같이 살았다. 평생을 믿고 살아 온 여자한테 배신까지 당하게 되니, 이러고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한테 사기를 쳐도, 내 돈을 뺏어가려고 달려들어도, 적어도 오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이불 덮고 자면서 자식 낳아 함께 키워 온 마누라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화가 나다 못해 분해서 눈물이 난다.
마누라고 뭐고 다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