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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재희 Aug 03. 2020

무엇이 나를 웃게 만드나?

캐나다 이민 - 슬픈 현실

2009년 31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 이민길에 나섰다. 아직 영주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젊음(?)과 잘 될 거라는 기대, 그리고 캐나다 대학생들에게 크리스천 제자를 세우리라는 원대한 포부로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부족한 영어 실력, 비 영주권자, 그리고 한국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휴대폰 개발하던 기술로 밴쿠버에서 직장을 잡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돈은 다 떨어지고, 나는 한국에서 해 본 적이 없는 웹사이트 개발 프리랜서도 하고 아내는 일식당에서 서빙과 세탁소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 년 정도 힘겹게 버텄는데 결국 신분 문제가 해결이 안돼 나는 미국으로 오게 됐다.


미국 이민 - 취업, 쉽게 되네!

미국에서 생활은 나름대로 잘 풀렸다. 식구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만 네가 속한 선교단체가 있는 LA로 갔다. 다행히 선교단체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다음 날 인터뷰를 보게 됐다. 친구가 매니저로 있었고, CTO는 화교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녀, 한국 정서와 한국말을 잘 알았다. 영어도 어눌하고 또 관련 기술도 부족한 나로서 미국 회사에 개발자로 취직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도움과 화교계 CTO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그것도 LA 간 이틀 만에  주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취직한 것이었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LA, 즉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 - 잘릴뻔하다

쉽게 직장을 구했지만, 전자공학 출신 하드웨어 엔지니어로서 소프트웨어 개발, 그것도 미국 애들과 영어로 하기는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만큼 많은 시간을 들였다. 미국 와서 5년 동안 직장, 교회, 그리고 집을 쳇바퀴 돌 듯이  다녔다. 운동이나 다른 여가 활동할 여력이 없었다. 긴장 속에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마음과 시간을 쏟았다. 늘 피곤했다. 한 번은 CTO에 회의할 때 졸기도 했다. 나중에 직장 친구로부터 들을 얘긴데 CTO가 나를 해고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드디어 웃을 수 있게 되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생활하다 한 번은 LA에 근교에 있는 Angeles National Forest로 드라이브 간 적이 있다. 산행은 하지 않았지만 뭔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에 자주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에 있는 산인 Mount San Antonio로 등산을 하러 갔다. 이 산은 남가주에서 3번째 높은 산으로 3000미터가 조금 넘는 산이다.   가장 쉬운 길은 정상까지 약 5 KM가 조금 넘는 그렇지만 가파른 산길이다. 큰 마음을 먹고 갔지만, 정상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정상을 몇 백 미터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는 숨이 차 죽을 것 같았다. 몇 발짝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 포기하기 싫었다. 아직 30대 중반인데, 나 자신이 한심했다. 한편 가볍게 뛰어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창피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오르지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푸시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눕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한 발짝 한 발짝 올랐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여튼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정상가 다 다르게 돼 있다. 죽을 것 같았지만,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고 짖누르는 몸무게를 감당키 어려웠지만, 결국 정상에 도착했다. 내가 해냈다는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살아서 해냈다. 이제 잠시 쉬어도 된다. 바닥에 떨 석 주져 않았다. 아예 등을 대고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편안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오후 햇살의 포근함에 휘감겨 땅을 침대 삼아 누워 있는 행복감에 얼굴에는 순순한 웃음이 무식적으로 나왔다. 이상했다. 뭄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곤한데 웃을 수 있다니. 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연약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하여튼 새로운 경험이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룬다

그때 깨달았다.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포기치 않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면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 매주 토요일 정규 산행을 다녔다. 15년이 흘렀다. 체력도 많이 좋아졌고, 집중력도 생겼다. 일의 능률도 향상됐고, 삶의 활기가 생겼다. 또 매사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심이 생겼다. 2011년에는 전문 산악인도 힘들다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 산인 Denali(McKinley) 정상에 올랐다. 


자연 - 편안한 웃음을 준다

이렇듯 늘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되돌려 주었다. 무엇보다는 자연을 나에게 웃음을 안겨 줬다. 아내가 나를 이해 못하고 아이들 문제로, 경제 문제로 또 여러 문제로 힘들게 할 때도. 직장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열심히 진행하는 팀 프로젝트에서 팀들이 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믿었던 사람,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어려 모로 신경을 써줬는데 뒤 돌아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큰 손해를 끼칠 때도, 나는 산에 갔다. 그러면 산은 나를 반긴다. 나무들이 나를 위로한다. 시원하게 흐르는 폭포는 마음의 먼지를 씻기 운다. 많은 물소리는 나를 시원하게 한다. 새소리는 나를 즐겁게 한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피곤은 나에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살아 있기에 고동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자연이 좋다. 자연은 나에게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로하며 웃음 짖게 만든다. 자연이 주는 웃음은 화려한 웃음이 아니다. 요란한 웃음도 아니다. 공허한 웃음도 아니다. 편안한 웃음이요 평온한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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