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제철음식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냉면. 북한에서는 랭면이라고 하는 요리는 한반도 고유의 국수 요리 중에 하나로 삶은 국수를 차게 식힌 육수에 넣고 양념과 고명을 얹은 요리를 말한다. 면은 주로 메밀로 만든 국수를 사용하지만 칡이나 감자, 고구마, 밀 등으로 만든 국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오이와 채소, 배, 고기와 삶은 달걀, 혹은 잘 숙성한 홍어회를 양념에 버무려 얹어 먹기도 한다.
고려 중기의 평양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냉면. 하지만 정확한 기원이 밝혀진 적은 없다. 북한에서는 냉면은 고려 시대에 메밀로 수제비 반죽을 만들어 국수를 뽑아 먹던 것이 그 시초이며, 차게 식힌 곡수(穀水)에 그 면을 말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한때는 우리 민족 특유의 난방 시스템인 온돌이 지닌 태생적 한계(온도의 조절이 어렵다)로 인하여 몸을 식히기 위해 왕실이나 양반들이 얼음을 구해다 겨울철에만 먹던 것이 근현대를 거치며 얼음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여름 별미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차가운 계곡물이나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내 김치나 간장으로 맛을 가미하여 국수를 말아먹기도 했다는 어르신들의 추억에서만 보아도 상류층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을 듯 싶다.
근데.. 양반들이나 왕족들도 과연 이 냉면을 겨울철에만 먹었을까? 한번 역사를 짚어가며 냉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냉면이라는 단어가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인조반정의 주역이자 효종비 인선왕후의 아버지이며, 의정부 우의정의 지위에 올랐고, 사후에는 문충공 신풍부원군(文忠公 新豊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조선 중기의 양명학자이자,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 중에 하나인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년∼1638년)가 죽기 3년 전인 1635년에 펴낸 계곡집(谿谷集)에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紫漿冷麵)'라는 구절이 등장하니, 어쨌든 상당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음식이라는 거다.
다만 장유의 계곡집에선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만 이게 겨울철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계곡집(谿谷集)이 '냉면'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언급된 문헌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냉면'이라는 음식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언급된 문헌은 1849년, 즉 헌종 15년(혹은 시기에 따라서는 철종 1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에 정조와 순조 시대에 부사(府使))를 지냈던 도애 홍석모(陶厓 洪錫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라고 볼 수 있다.
동국세시기는 중국 육조 시대에 호북 지방(그러니까 후베이)과 호남지방(그러니까 후난) 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양나라 출신의 학자인 종름(宗懍)이 편찬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모방해서 만든 책. 조선 후기의 풍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원본은 소실된 지 오래고, 사본이 남아있을 뿐이다.
참고로, 이 동국세시기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를 함께 넣어 무김치 국물에 담아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1896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규곤요람(閨壼要覽)에서는, "밋밋한 맛이 나는, 간이 덜 된 무김치국에 메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잘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배와 밤, 그리고 복숭아를 엷게 저며 넣은 후, 잣을 넣어 먹는다"라고 나온다.
참고로 규곤요람이 "1896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는 뭔 소리인고 하면, 이게 공개된 시기가 구한말에 연희전문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연세대에서 공개가 된 책인데, 일단 누가 쓴 건지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 한식업계에서 귀중한 자료로 많이 인용되는 책인데, 구한말의 먹거리 풍습이 꽤나 자세하게 나와 있는게 특징이다.
규곤요람은 고문서를 뒤집은 반고지(反古紙)에 기록되어 있고, 사실 앞 뒤 몇 장이 소실되어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18장이다. 8종류의 요리와 27가지의 술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책으로, 조선 말기의 식생활과 풍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연희전문학교에서 공개를 한 책인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신암문고가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1919년,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경상북도 상주의 군수직을 임했던 심환진(沈晥鎭)이 필사한 시의전서(是議全書)의 상편 주식류의 면편에서 냉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나박김치나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양지머리, 배, 배추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잣을 올려 먹는다"라고 기록되어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고기뼈를 우려내거나 고기를 우려낸 장국을 차게 하여 국수를 말아먹기도 한다"는 기록이 함께 곁들여있는 것으로 보아, 냉면 자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냉면이라는 음식의 역사는 고작해야 100년 정도 된 거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궁금한 건 이거다. 겨울철 음식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 건 사실상 냉면이 기록된 문헌들 중에서 "동국세시기" 밖에 없는데, 과연 진짜로 "겨울철에만 먹은 음식"이었을까 하는 궁금점이라는 거. 이런 의문을 던져보는 이유는 바로 사시사철 얼음을 관리하는 장빙제도(藏氷祭度)가 조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얼음을 사시사철 관리하는 제도는 신라시대 때부터 존재해왔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을 두어 얼음을 관리해왔고, 고려시대에는 유구(遺構)라는 관청이 이를 담당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역시 빙고(氷庫)라는 직제를 두어 5품 제조(提調) 이하의 많은 관원을 두어 관리하였는데. 태종실록에 처음 빙고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세조실록에도 얼음을 사용한 기록들이 있으며, 고종 또한 얼음을 즐겨 사용했다고 하니 우리 민족은 꽤나 오래전부터 나름 쾌적한 서머 라이프를 즐기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상류층에 한정된 이야기겠지만.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장빙군(張聘君)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강에서 얼음을 잘라내어 석빙고(石冰庫)로 옮기는 일을 도맡아 해던 백성들과 차출된 군사들을 의미한다. 매년 조선에서는 음력 12월에 한강의 얼음을 잘라 내어 빙고에 보관을 하고, 춘분에 이르러 빙고 문을 열어 얼음을 여름철의 제사와 잔치, 식료품이나 약품의 보관, 그리고 장사를 지내야 하는 시체들을 위생적으로 관리를 할 때 사용했는데, 얼음을 잘라내어 빙고로 옮겨 보관하기 전에는 사한제(司寒際)라는 제사를 지내고, 빙고를 개방할 시에는 개빙제(開氷際)라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조선 정조 시대의 실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류득공, 1748년 12월 24일 ~ 1807년 10월 1일)의 아들이었던 유본예(柳本藝)가 집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여하튼, 서울 사람들에게는 동빙고라던가 서빙고라던가 하는 지역명으로 더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 빙고라는 건 한성부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지방 요소요소에 꽤 있었다. 일단 그 모습이 나름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적들만 해도 경주, 안동, 창녕, 달성, 청도 등에 남아있고, 북한에도 해주에 빙고 유적이 있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단, 유적이 남아있는 것들은 죄다 "석(石)빙고"들이며, 서빙고는 목조건축물이었기에 훼손되어 그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런데.. 도읍 한성부를 비롯, 조선 각지의 주요 대도시에는 15세기 무렵부터 얼음을 판매하는 업자들이 이미 존재했고, 영·정조시대 이후에는 한강 주변과 전국 각지에 생선, 육류 등을 보관하기 위해 얼음을 보관하고 판매하고 공급하던 사빙고가 널리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실록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18세기 중엽의 조선 전국 각지의 사빙고가 저장하고 있던 얼음량은 장빙제에 의해 국가에서 관리하던 양의 최소 4-5배 정도는 되었을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의 돼지고기 유통 인프라인 저육전(猪肉廛)이나, 수산물시장에 해당하는 생선전(生鮮廛)에서 이미 얼음을 사용하여 식품을 보존했다는 이야기가 각종 문헌에 등장하고 있고, 또 생선을 "얼려서" 육지로 끌고 오는 이른바 냉동선에 해당하는 빙어선(氷魚船) 또한 이미 존재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다시 내 궁금점으로 돌아가서..ㅎㅎ
정말 조선사람들은 냉면을 "겨울철"에만 먹었을까?
얼음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있는 빠방한 양반집 인간들이나, 혹은 양반은 아니더라도 장사로 대박을 쳐서 양반 부럽지 않은 라이프를 즐기던 중인들 중에 냉면을 여름철에도 먹는다던가, 혹은 프렌차이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고급화 전략"을 펼친 식당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민간에서 거래되는 얼음의 양이 궁궐과 관아에서 사용하는 양의 4-5배를 훌쩍 넘겨버린 18세기 중엽의 조선에서, 국수를 차게 해서 먹어보겠다는 실험을 한 새끼가 없었겠냐고. 냉면을 특히나 좋아했던 고종의 경우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냉면을 주문하여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얼음으로 차갑게 육수를 시켜서 냉면을 서빙하던 식당들은 이미 구한말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ㅋㅋ 자 과연 역사 속 진실은?
뭐 그렇다고. 후후후후
p.s. 냉면을 먹고 싶은데 감기에 걸려버렸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라면이다 라면.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