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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우 Feb 14. 2019

위생의 역사

위생 개념은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왠지 '위생'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인간의 삶을 저해하거나 혹은 해를 끼치는 요소들을 제거하여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를 지닌 위생(衞生). 영어로는 Hygiene이라고 한다. 인간의 건강에 유익하도록 그 조건을 갖추거나, 혹은 대책을 세우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상황 별로 위생 기준이 각기 다르게 정립되어 있고, 또 문화적인 차이나 종교, 혹은 성별에 따라 위생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소 갈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생적이라는 삶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고 또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위생이라는 개념이 서양의학에서 보편타당한 개념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 역사는 사실 의료의 길고 긴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그리 오래된 개념이 아니다. 


이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 아니 그 이전의 문명 시대에도 그 나름의 위생관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일반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는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60여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참한 전염병과 수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겨우 알아차리게 된 것. 


흔히 고대나 중세시대는 근세(17~18세기 초반의 근대 초기를 의미함)보다 열악한 위생 환경의 시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흑사병과 매독이 확산되기 시작한 14세기 중반 이전 까지만 해도 나름 위생적인 삶을 누리던 시대였다. 


이는 고대 로마 제국이 남긴 유산인 목욕탕과 목욕 문화가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위생 면에서 암흑기로 인식되는 중세 초기 시대에는 목욕을 즐기는 것이 미덕이자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론, 고위급 성직자들이나 귀족들, 이름 높은 기사들과 향사들을 제외한 일반 서민들의 경우 목욕을 즐기거나 하는 것은 어려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목욕을 아예 하지 않던 근세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중세 초기가 훨씬 더 위생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미지 002. 영국에 남아있는 로마 목욕탕 유적.


그러나 중세 후반기에 접어들어 카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물들을 부정하는 풍조가 확산되었고, 실질적으로 고위층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목욕탕 문화가 문란하게 변질되어 오히려 위생적이지 못한 시설들이 되어 버리면서 중세 초기까지 유지되어 온 목욕 문화가 사라져버리게 된다. 게다가 이 시기의 의학자들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모공이 쉽게 열려 역병이 침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란한 행위를 일삼아 전염병의 온상이 된 목욕탕의 실태를 그 나름대로 분석하여 돌출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믿음이었고, 결국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흑사병 사태로 번지게 된다. 문제는 흑사병이 창궐하던 당시에도 목욕탕을 청소하거나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지 않고, 대신에 ‘옷’을 갈아입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 


18세기 초반까지 유럽인들은 물기가 몸에 닿거나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병에 감염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로 씻는 것은 손을 살짝 씻는 정도. 목욕을 하는 대신 유럽인들은 리넨(Linen)으로 짠 옷이 땀을 흡수한다고 믿었고 리넨 옷을 입고 땀을 흘린 후 옷이 땀에 범벅이 되면 다시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면 몸이 깨끗해졌다고 믿었다.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나이팅게일을 묘사한 당시의 판화


 위생의 개념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3월 30일까지 약 3여년에 걸쳐 러시아 제국과 불가리아에 맞서 오스만 제국과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벌인 이른바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에 종군한 위대한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도입한 야전 위생 지침이 민간에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고작 3년간의 전쟁에서 전사한 양측의 병사들만 80만명을 넘긴 이 처참한 전쟁은, 실제로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수보다 가벼운 부상을 치유하지 못하거나, 혹은 병상에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병사들의 수가 네 곱절은 많았을 정도였다.   
 
나이팅게일이 도입하여 실시한 것들은 ‘오염된 침대 커버 위에 환자를 눕히면 안된다.’, ‘더러운 붕대를 자주 사용하면 안된다.’, ‘병동에서는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혹은 ‘병이 쉽게 전파되지 않도록 환자와 환자 사이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기초적인 것들에 불과하지만 이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크림 전쟁 후반기에 이르러 영국군 부상자들의 병원 내 사망률은 40%에서 2%로 크게 감소하게 된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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