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찬우 Mar 26. 2019

타쿠앙은 일본음식이 맞습니다.

뭐 맛있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ㅋ  

세간에는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사실 XX라는 외국 음식의 기원은 한국이었다'라는 식의 소위 '국뽕'을 빨아대는 방송 콘텐츠나 SNS 카드 뉴스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단무지'에 대한 것이다.  

즉. 단무지혹은 타쿠앙은 고구려시대의 승려였던 택암이라는 자가 일본에 건너가 단무지를 전래했기 때문에 택암의 일본식 발음인 타쿠앙이 되었다는 이야기.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흔히 다꾸앙이라고 불리우는 “타쿠안즈케(沢庵漬け)는 일본의 전통 반찬 중에 하나이고, 에도시대에 고안된 반찬 중에 하나이다. 

국내에서는 특히, '고구려 시대의 택암이라는 승려가 일본의 전국시대로 건너가 전란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었던 백성들과 병사들에게 단무지를 고안하여 퍼트려 인기를 끌었고, 음양오행을 중시하여 노란색으로 물들였으며, 이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였던 토쿠가와 이에미츠 장군이 택암의 이름을 따 “타쿠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라는 식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호기우라 노키오'라는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를 들먹이며 그가 '고승대덕전(高僧大德傳)'이라는 일본의 사료를 근거로 택암이 고구려에서 전국시대의 일본으로 건너갔다는게 입증되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 역사에서 전국시대(戦国時代, 센고쿠지다이)라고 불리는 시기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가 사실상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전국의 유력한 권력자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던 서기 1467년부터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 서기 1615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일본의 전국시대. 대략 1599년 경의 상황. 이렇게 쪼개져 있었다.


즉, 서기 668년에 멸망한 나라 출신의 승려가 일본의 전국시대로 건너갈 수 없다는 이야기. 

게다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그 승려가 단무지를 나누어주는 걸 보고 이를 그 승려의 이름을 붙혀 부르기로 했다는 토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는 에도 막부 3대 장군으로,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 의 아들인데, 그가 에도 막부의 3대 장군으로 취임한 것은 1623년의 일로, 에도 막부에서 전국시대가 끝났다고 공표한 1615년으로부터 무려 8년이나 지난 태평성대의 시대의 일이다. 

토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1604년생. 포스트 전국시대 차일드임. 


이에미츠의 시대는 이미 조선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상태이고, 전국시대는 실질적으로 아버지 히데타다의 시대에 그 막을 내렸으며, 막부에 의한 무사어법도가 공표되어 새로운 세상이 된 이후이니까. 

당연히,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도 아니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 가문을 따르는 이들과 토쿠가와 가문을 따르는 이들이 일본의 명운을 걸고 한 판 붙은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 것이 서기 1600년인데, 이에미츠가 태어난 게 1604년이다. 앞뒤가 맞지 않아도 너무 안 맞잖아!! 

그리고 
고승대덕전(高僧大德傳).

고승들의 전기를 집성한 이른바 고승전(高僧傳)이라는 것은 중국 남북조시대를 대표하는 양나라의 승려, 혜교(慧皎: 497-554)가 저술한 고승전을 표준으로, 후대에 중국, 한국, 일본, 타이, 베트남 등에서 이름 높은 승려들의 삶을 소개한 여러 종류의 책자를 의미한다. 

혜교의 고승전이 가장 유명하고, 후대에 같은 명칭의 문헌이 상당히 많이 편찬되었기 때문에 혜교의 버전은 양나라 시대에 편찬되었다 하여 양고승전(梁高僧傳)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간략하게 양전(梁傳)이라고도 한다.  


고승전(高僧傳) 대략 이렇게 생긴 책이다.


문제는, 일본에서도 현재 高僧伝이라고 불리는 문헌이 적게 잡아도 30여종이 넘게 존재하는데, 高僧大德傳이라는 명칭의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거다. 당연히, '호기우라 노키오'라는 역사학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솔까말, '비사이로 막가' 같은 아재 개그가 훨씬 더 일본 이름 같이 들릴 정도로 '호기우라 노키오'라는 이름은 상당히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물론, 단무지의 색깔이 노란 이유가 음양오행을 중요시 여겨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틀린 거다. 원래 타쿠앙은 노란색보다는 갈색을 띄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는 밀기울이나 미당에 호기성 간균의 한가지인 고초균이 포함되어 있어 변색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타쿠앙. 아주 노랗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타쿠앙의 경우 어떤 것은 노란 색에 가깝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갈색에 가깝게 되는 등,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따르면 그 색이 통일되지 않아 보기에 흉하다고 하여 색을 통일하기 위하여 강황의 덩이뿌리를 말린 울금을 넣거나 혹은 치자나무의 열매를 우려낸 물을 넣어 색을 입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법은 에도 말기에 이르러 정착된 것이고, 20세기에 이르러 타쿠앙이 대량생산되면서부터 아예 황색 색소를 이용하는 케이스가 정착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타쿠앙이 노랗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것도 보기 흉하다고 생각해서 그리 된거지, 음양오행에 의거하여 노란색이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참고로 고초균은 간균과의 일종으로, 공기나 흙에 있는 비병균성 균이다. 홀씨를 형성하여 저항력이 강하고, 글리코겐을 다수 함유하고 있어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산을 생산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타쿠앙이 강한 산미를 내는 이유는 밀기울이나 미당에 포함되어 있는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산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뭐, 고리타분한 팩트 체크는 이 쯤으로 해두고, 타쿠앙. 

타쿠앙은 전란에 먹을 게 없어서 고안된 음식이 아니고, 전국시대에 태어난 음식도 아니며, 에도시대에는 상당히 “고급”진 반찬으로 통했던 음식 중에 하나다.  


이름의 기원은 일본 전국 시대 말기에서 에도시대 전기에 걸쳐 도쿠가와 막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본 임제종(臨済宗, 중국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선종의 한 유파)의 승려였던  타쿠앙 소호(澤庵 宗彭 1573년 12월 24일~1646년 1월 27일)가 고안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에도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 중에 하나이자,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심복이기도 했다. 


타쿠앙 소호(澤庵 宗彭), 일본 사극에서는 東海(토우카이)라는 또 다른 법명으로 자주 등장한다. 


일각에서는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 延暦寺)의 18대 주지이자,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천태종 승려였던 료우겐(良源. 元三大師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慈恵大師라고도 불리웠다)이 스님들이 수행할 때 먹기 위한 음식으로 고안한 죠우진보우(定心房)가 그 기원이라는 설도 있으며, 타쿠앙 소호가 엔랴쿠지의 절간에서만 먹던 이 음식을 대중화시켰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 엔랴쿠지에 전해내려오는 단무지는 타쿠앙과는 그 조리법 및 보존법에 큰 차이가 있다.  


료우겐(良源). 서기 912년 ~ 985년 1월 31일.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승려 중에 한 명이다.


엔랴쿠지에서 상품으로도 판매하고 있는 죠우진보우(定心房)는 먼저 무를 말린 후, 짚과 흡사한 고본(藁本: 미나리과에 속하는, 강한 향이 나는 여러해살이 풀)으로 감싼 후,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숙성을 시켜 만든다. 반대로 타쿠앙의 경우, 무를 몇일간 말린 후, 밀기울이나 미당(쌀로 얻는 당분)과 소금에 절여 수개월간 숙성을 시켜서 만든다.

이게 죠우진보우(定心房). 사실 죠우진보우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단무지보다 더 짠 맛이 나는 음식이다. 


일본의 일부 지방에서는 고추를 함께 넣어 약간 매콤한 맛이 나도록 숙성을 시키는 케이스도 있고, 남부 지방에서는 다시마를 함께 넣어 숙성시키기도 하며, 토호쿠 지방에서는 감나무의 껍질을 넣어 특이한 향을 가미시키기도 한다. 


타쿠앙은 에도시대 중기까지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반찬 중에 하나로 통하며 일반 서민들에게는 판매되지 않았으며, 주로 에도에 상주하는 사무라이들과 하타모토(其本: 막부의 장군 및 장군가를 수호하는 호위무사들을 일컫는다)들의 밥상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이며, 막부 말기와 메이지 유신을 거쳐 대중화되었다.


신코마키(新香巻). 지금은 그리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 초밥집에서 젊은 사람이 이걸 주문하면 모두들 갸우뚱? 한 표정을 지을 정도니까. 물론 유명 초밥집에선 만들어주긴 한다. 


에도 시대를 거치며 여러 가지 요리에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응용법 중에 하나는 신코마키(新香巻)이라고 불리는 초밥이다.

신코마키는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초밥 중에 하나인데, 샤리(酢飯 스메시라고도 한다)에 타쿠앙을 넣어 김으로 말아낸 얇은 초밥이다. 참치를 넣은 텟카마키, 오이절임을 넣은 캇파마키와 함께 얇은 김말이 초밥 중에 하나로 유명하다. 

뭐, 그렇다구. 후후후후. 

전국시대에 일본에는 전란으로 인하여 백성들과 병사들이 먹을게 없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시간이 나면 진중식(응 그러니까, 전투식량)과 전국시대의 먹거리에 대한 글로 대신할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어컨 님, 사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