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찬우 Sep 16. 2020

에어컨 님, 사랑합니다.

가을이 왔다고 하지만 아직 덥다. 


일본의 순정만화작가인 '타카야 나츠키(高屋奈月)' 작가는 그의 네번째 장편 만화이자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후르츠 바스켓'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는 것은 눈 앞에 있는 것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도 모두 끌어안는 것이다.' 


응. 


에어컨느님. 사랑합니다.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한 인류의 궁리와 연구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에어컨의 역사 자체는 최소 2천년을 넘었다는 거다. 


중근동 지방이나 소아시아, 헬레니즘 문화권에서는 주로 '시스턴(Cisterns)'을 사용하거나 이를 응용하여 거대한 윈드 타워를 통해 차게 식힌 공기를 건물 내부로 주입하는 형태의 '에어컨'이 존재했다. 


수메르,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유대왕국, 그리스의 크고 작은 폴리스들, 이집트 제국, 로마 공화정과 제정 당시의 유적들에서 이러한 형태의 공조 시스템을 발견할 수 있고 아시아의 경우 후한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 '정완(丁緩)'이 무려 '냉풍기'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이 냉풍기는 직경이 3미터가 넘는 7개의 차륜이 장착되어 있었고 수백명의 노비들이 동원되었다는.. 뭐 좀 많이 무시무시한 물건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앞선 고대 이집트에서는 창틀에 커다란 천을 걸어놓고 이를 돌려서 바람을 쐬게 하는 시스템이 고급 주택가들에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심지어 잔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 천을 물에 적셔놓은 후에 천천히 돌리는 방식으로 열을 식혔다고. ㅎㅎ 


좀 더 과학적인 형태의 공조 시스템이라면 당나라의 6대 천자였던 '현종(685년 9월 8일 ~ 762년 5월 3일)'이 자신의 궁궐에 '량전(涼殿)'이라는 시설을 세우는데 이는 수압과 프로펠러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끌어올려 상수도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지하수의 냉기를 응용하여 건물 내에 찬 바람을 공급하는 냉풍기 역할을 함께 했다. 뭐 비단 중국 뿐 아니라 한반도나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도 거대한 냉풍기 같은 시스템이나 혹은 장빙 시설을 이용한 공조 시스템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니까. (예전에 칼럼으로도 썼지만 내가 조선시대에 냉면은 겨울철에만 먹은 음식이 아닐거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은 왜란 이전에 이미 사대문 안에서 얼음을 여름철에 저잣거리의 상인들과 양반들에게 판매하는 사빙고가 존재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그러니까 촉매에 의한 냉방을 고안한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인데, 1758년 여름에 밀폐된 실험실에서 메탄올과 에터(에테르)를 사용해서 순식간에 실험실 내부 온도를 영하로 떨어트리는 실험을 한 게 계기다. 


물론, '벤자민 프랭클린'은 에어컨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한 여름에 사람을 얼려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나 뭐라나? 


여하튼 캠브릿지 대학에 그 당시에 '존 해들리'와 함께 작성한 논문의 원문이 남아있고, 도서관에서 마이크로 필름 및 번역본의 열람이 가능하다. 결론은.. '응 얼려 죽일 수 있음 ㅋㅋ'로 끝나는게 압권. 


뭐 이후에도 냉매나 촉매를 사용하여 찬 바람을 공급하는 기계를 발명하거나 시도한 사람들은 동양이건 서양이건 엄청 많은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에어컨을 최초로 개발하고 또 양산하여 보급을 한 위대한 분은 바로 '윌리엄 하빌랜드 캐리어(Willis Haviland Carrier, 1876년 11월 26일 ~ 1950년 10월 7일)'라는 분이다. 응, 에어컨과 히터로 유명한 그 '캐리어'라는 미국 업체를 만드신 분이다. 무려 105년 전에. 


이 분이 오늘날의 형태에 가장 유사한, 전기를 동력으로 냉매를 사용하여 차가운 공기를 뿜고 실외기로 열을 방출하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구축하신 분이다. 싸랑합니다 캐리어느님. 무려 1902년에 에어컨 특허를 내주셔서 싸랑합니다. 


뭐, 그렇다구. 


'타카야 나츠키(高屋奈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는 것은 눈 앞에 있는 것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도 모두 끌어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에어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에어컨의 과거 역사를 줄줄 꾈 정도로!! 우후후후우헤헤헤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 


p.s. 요즘 우리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외기 온도가 가을 날씨가 되어 냉방 공급을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까지만 하겠다'는 망언을 매일 같이 안내 방송으로 공지한다고 해서 이런 글 쓰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아직 더운데.. 아니 새벽 덥던데..ㅋ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해태 연양갱(鍊羊羹)은 왜 '으깰 연(鍊)인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