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려면 어때 맛만 좋으면 되지.
그러고 보니...
해태 연양경의 연은 부드럽거나 연하다는 뜻의 연이 아니다.
부드러울 연은 한문으로 軟라고 쓰는데, 해태 연양갱의 경우 으깰 연(鍊)을 쓴다.
양갱 자체는 중국에서 탄생한 먹거리다. 원래는 동물의 피를 굳혀서 먹는 형태(양의 피에 소금과 한천을 섞어 만든다)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 형태가 남아있긴 한데 선지랑 비슷한 식감이다. 그닥 추천해드리진 않겠다.
단 양갱(羊羹)이라는 단어는 중국에서도 디저트로 통한다.
양갱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건 위진남북조시대에 동진의 장수였던 모수지(毛脩之, 375년 ~ 446년)가 동진의 초기 북벌 과정에서 북위에 포로로 잡혔을 때 당시 북위의 천자였던 세조 태무제(世祖 太武皇帝, 408년 ~ 452년 3월 11일)에게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송서(宋書)에 등장하는게 최초다.
양갱의 시발점에 어디든, 양갱이 디저트로서 발전을 거듭하게 된 건 중국이 아니라 일본인데, 재미있는 건 일본에서도 양갱이 문헌 상 최초로 등장하는게 무로마치 시대의 초기에 해당하는 남북조시대라는 점이다.
庭訓往来(테이킨오우라이)라고 하는, 당시 일본에서 주로 사찰 두등에서 사용된 일종의 교과서같은 문헌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양갱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 이 시절의 양갱은 팥이 아니라 주로 칡을 갈아서 만들었다고 하며, 교토의 공가(公家, 쿠게. 중세 봉건 일본 조정의 신하들이나 귀족을 의미함)들이 주로 먹었던 디저트로 소개되며, 당시 일본은 설탕을 자급자족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밀당을 사용한 양갱은 특히 砂糖羊羹이라고 하여 텐노에게만 바치는 과자였다는 기록이다. 또한 이 당시의 양갱은 재로를 섞어 틀에 넣은 후 증기로 쪄서 먹는 음식이었다.
일본이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여 설탕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건 19세기 중후반부터이기 때문에, 양갱 또한 20세기 이전까지는 상당히 고오급 과자로 통했고 지금도 화과자 중에서는 고오급 이미지가 통하는 편.
단, 17세기 중반부터 일본은 밀당에서 흑설탕으로 대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종래의 레시피는 사라지고 말았다. 칡에 밀당을 섞어 텐노와 공가들이 먹었다던 양갱이 과연 어떤 맛이었을 지는 상상 속의 영역이라는 것.
양갱에 팥을 사용하게 된 건 전국시대가 정리수순으로 들어가 전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던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다. 고려 및 조선과의 활발한 교류로 팥이 대량으로 일본에 유입되면서부터 칡에서 팥으로 주 재료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갱은 이 때부터 한천을 넣어 굳히는 형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걸 煉羊羹(네리요오깡)이라고 하고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로 유입된 것도 이거다.
뭐, 미즈요오깡(水羊羹)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양갱보다 수분을 좀 더 많이 머금고 있어서 식감이 아주 부드러운 것도 있긴 하다. 일본에서는 동그란 형태의 젤리처럼 만들어 먹는 타마요오깡(玉羊羹)이라는 것도 존재하기는 하는데 주로 에도시대에 유행하던 물건이라 요즘 찾아보긴 힘들고..
뭐 여하튼 역사는 대충 그렇다는 거고 ㅎㅎㅎㅎ
해태 연양갱으로 돌아와서...
한반도에서도 양갱은 디저트로 통하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문헌에도 등장하지만 이게 값싸고 맛있는 대중적인 디저트로 통하게 된 건 일제시대부터다.
서울의 경우에는 용산 효창동과 남영동 일대가 값싼 디저트와 과자 등을 만드는 공장들이 즐비했던 지역이고 이 일대의 해태제과나 오리온의 과자 생산 공장들이 죄다 광복 후 적산 불하로 받은 공장들로 시작한 설비들이다.
해태제과의 경우 남영동에 있던 나가오카 제과의 설비를 적산 불하받아 1945년에 창립했다. 연양갱이라는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61년부터지만.
煉羊羹(네리요오깡)도 우리 식으로 읽으면 연양갱이 된다. 훈양갱이라고 읽어도 되긴 하지만. 煉에는 훈제했다는 뜻도 있거든. 물론 煉羊羹(네리요오깡)이라는 건 훈제를 해서 만든다는게 아니라 팥소를 넣기 전에 한천을 가열해서 만든다ㅡ즉 불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붙혀진 이름이지만.
그래서 미스테리인게... 해태제과는 왜 하필 으깰 연(鍊)자를 쓰게 된 건지 심히 궁금해진다는 거지.
생산과정에서 팥을 으깨어 기계에 넣어 팥소를 만드는 걸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사실 원래는 이걸 으깨서 빵 같은데 넣어 먹는걸 의도한 건지, 졸라 궁금해 미치겠는데 왜 으깰 연(鍊)자를 썼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거야.
혹은.. 이건 내 개인적인 추론에 불과한데....
煉羊羹이라고 하면 너무 일본 느낌이 나니까 같은 발음이지만 한문을 그냥 다르게 해서 왜색을 빼고 상품의 차별화를 두려고 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는데 아무래도 이게 맞는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있는데 진실은 알 수 없으니 나중에 한번 각 잡고 취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막.
뭐 아무려면 어때,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 후 디저트는 양갱. 해태 연양갱으로다가.
참고로 연양갱은 밤양갱이 최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