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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우 Jan 19. 2020

4. 빨강 머리 백설공주: 赤髪の白雪姫 (연재 중)

소극적이지 않고 수동적이지 않은 당찬 21세기의 백설공주 

A. 기본 개요 - ‘백설공주의 현대판 재해석’

2002년에 ‘하쿠센샤(白泉社)의 순정만화잡지인 ‘LaLa DX’에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할 목적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LaLa Manga Grand Prix(ララまんがグランプリ)’에서 단편 만화 ‘유토피아(ユートピア)’로 금상을 거머쥐며 화려한 데뷰를 이룩한 ‘아키즈키 소라타(あきづき 空太)의 일곱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 연재 만화이다.

2019년 1월 기준 단행본이 20권 나와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수입하여 번역, 출간하고 있다. 


제목만을 보자면 ‘그림동화(Kinder- und Hausmärchen, Grimms Elfenmärchen. 1812~1854)’에 등장하는 53번째 이야기인 ‘백설공주(Schneewittchen, 혹은 Snow White)’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주인공의 이름이 ‘백설(白雪, 시라유키)’라는 것을 제외하면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과를 연상시키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역시 스토리를 이어 나가기 위한 단순한 장치로 쓰여질 뿐이고 작중 큰 의미도 없기 때문에, 해당 동화와 연관성은 없는 작품이라고 보아도 된다. 


B. 
줄거리 - ‘백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다’


탄바룬 왕국의 성하(城下)마을에서 살고 있는 ‘백설(일본명은 시라유키, 白雪. 단 배경이 일본이 아니다보니 이름은 카타카나로 표기된다)’은 18살의 여자 아이.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거두어져 함께 살다가 성장한 후에는 약초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게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약제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눈처럼 하얗다’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잘 익은 사과처럼 붉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어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묘한 관심을 받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왕궁으로부터 사자가 와 탄바룬의 왕자, ‘라지 셰나자드’가 자신의 머리색에 관심을 품고 ‘애첩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으니 신변을 정리하고 왕국으로 출두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운명이 고작 자신의 머리색에 좌지우지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납득하지 못하는 ‘백설’은 탄바룬을 떠나기로 결심힌다. 

국경을 너머 숲 속을 헤매던 중 ‘백설’은 우연히 발견한 빈 집에서 ‘젠’이라 불리는 청년과 그의 측근인 ‘미츠히데’, 그리고 ‘키키’와 만나게 된다. 
 
 ‘젠’의 다친 상처를 치료하면서 이들과 가까워진 ‘백설’이지만, 얼마 되지 않아 국경을 넘어 ‘백설’을 잡으러 온 라지 왕자 일행의 꾀임에 넘어가 ‘젠’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에 책임을 느낀 ‘백설’은 라지 왕자와 함께 탄바룬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지만, 몸을 추스린 ‘젠’이 돌아와 자신의 신분(클라리네스 왕국 제 2 왕자)을 밝히고 라지 왕자로부터 다시는 백설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맹세 받는다.

그리고 백설은 젠, 미츠히데, 키키와 함께 클라리네스 왕국으로 가 정식으로 궁정 약제사가 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는데… 


C. 
중점설명 - ‘백설공주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일본 순정 만화의 변화’ 


‘백설공주’는 그림동화에 수록된 독일의 전래동화인데, ‘백설공주’는 계모로부터 구박을 받고 쫓겨난 한 소녀가 드워프들에게 구제되어 생활을 하던 도중, 계모가 보낸 자객들에 의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살해당할 뻔 했다는 전승과, 탄광촌에서 불우하게 자랐던 한 소녀가 계모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16세기 독일의 귀족이자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Felipe II de Habsburgo, 1527년 3월 21일~1598년 9월 13일)이 흠모하던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Margaretha von Waldeck 혹은 Maria Sophia Margaretha Catharina von Erthal. 1533년 ~ 1554년 3월 15일)의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사학계와 문학계의 정론이다. 
 
‘마르가레테 폰 발데크’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슬하에서 양육되지 않고, 삼촌에게 거두어져 계모의 감시를 받으며 살다가 요절한 여인인 만큼, 백설공주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들은 모두 불행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살았지만 종국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그것이 자신이 노력하고 역경을 극복해내어 이룩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의 구원에 의해 인생이 역전된다는 구도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구도는 특히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고 판타지적 세계관을 가지고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정만화 작품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대부분 여성의 등장인물, 혹은 작품의 히로인이 남성에 비해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아니, 비단 판타지 세계관을 갖춘 작품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순정만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여성인권이나 전통적으로 요구되어온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 것이 원인이고, 또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비슷한, 이른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가 왕자를 만나면서 신분상승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에 휘말리다가 종국에 사랑을 받아드리는 구도를 가진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많은 편이지만, 여전히 일본의 순정만화들, 특히 남녀의 연애담이 그 내용의 중심이 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수동적이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러나 앞서 간략하게 설명한 대로, 이 작품은 ‘백설공주’라는 전래동화에서 착안한 작품이 아니며, 내용 또한 전혀 다르다. 단지 주인공의 이름을 백설공주에서 차용했을 뿐이다. 


그녀를 노리는 계모도 존재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거울도 등장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수동적으로 핍박을 받는 삶을 살다가 자신을 구원해주는 왕자의 존재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강머리 백설공주’의 ‘백설’은, 진취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당찬 여성이다. 


D. 
그리고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 - ‘일본인 듯 아닌 듯 하지만 일본 풍의 작품’ 


a.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일본 풍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령, ‘백설’의 연인이 되는 클라리네스의 왕자인 ‘젠’의 경우, 지극히 일본적인 이름과 ‘위스탈리아’라는 서양적인 성을 가졌다. 그의 측근인 ‘미츠히데(미츠히데 루엔)’나 ‘키키(키키 세이란)’도 마찬가지. 작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백설’을 제외하면 모두 카타카나로 표기하는 것도 이 작품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b. 작중에선 인종이나 민족 간 차별, 혹은 계급사회에서 벌어지는 신분간 갈등 등을 다루기도 하지만 기본이 연애물에 순정만화이다 보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은 편이다. 


E. 총평 

일본 순정 만화 중에서도 특히 난이도가 낮고 읽기 쉬운 작품이다. 몰입도도 괜찮은 편이고 자극적인 내용이나 일본 만화 특유의 여성 비하적 표현도 없고 술술 읽히는 작품. 애니메이션도 제작되었으며 이쪽도 나름 추천한다. 



이 만화를 읽는데 필요한 덕력지수: 19

접근성: 1

난이도: 2

특색: 5

재미 포인트: 5 

감동 포인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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