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연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피성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사건이 연속으로 터지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을 버는 데 아주 괜찮은 묘약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항공권 가격의 열 배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술에서는 어찌됐든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건 내가 술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조지아라는 나라가 술이 흔하다는, 한국과 지극히 비슷한 장점이자 단점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패배시킨 연주자가 나왔던 뮤직카페에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두 번까지는 신기하게 나를 바라보던 시선도 많이 줄어들었고, 세 번째가 되자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를 연기한 올랜드 블룸의 친척은 아닌가 의심되는 비슷한 눈매와 코, 입술, 부드러워 보이는 금발을 살짝 쓸어넘기는 버릇이 있는 웨이터가 날 보고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종업원이니까 반가워하는 척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는 그렇게까지 한국처럼 모든 것이 상업화되어서 웃음을 파는 것이 당연시 되어 있는 동네가 아니다. 즉, 불필요할 때는 웃지 않는다. 러시아와 조금 닮은 점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날은 호스텔에서 핀란드 남자와 조금 말을 섞다가 같이 밥먹으러 나온 날이었다. 그는 사진작가라고 하면서 본인이 찍은 것들을 보여줬고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괜찮은 수준의 대화를 나눴지만, 그가 대화 방향을 본인의 성욕을 풀기 위한 대상을 찾고 있고 그 후보자 중 하나가 너일 수도 있다는, 원치도 않는 시혜적 주제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나는 NO를 외치고 자리를 떴다. 불쾌했다. 분노에 찬 발걸음으로 묵고 있는 호스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왜 내 손 바로 앞에 놓여져 있던 레모네이드를 그의 얼굴에 뿌려주지 않았던 걸까를 후회했다.
그러다가 조지안 세 명에게 픽업당했다.
픽업의 과정은 내가 생각해도 ‘신이 나에게 위로조를 보낸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묘했다. 나는 트빌리시에서 가장 비싼 호텔과 바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거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테라스석에서 양주를 까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의 금발인 그는 꽤 잘 생긴 편이었고 얼굴에 약한 나는 금방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가 손을 흔들면서 느닷없이 ‘코리안?’이라는 게 아닌가.
정말 신기한 게 이후로도 나는 유럽에서 머무는 동안 거리에서 날 한국인이라고 바로 알아보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도 날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 그도 아니면 다른 나라(베트남 등) 태생으로 봤지 한국인일 거라고 추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슬픈 얘기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한국인으로 보이려면 일단 화장이 빡세야 한다. 조지아도 마찬가지라서 내가 그곳에서 지내는 내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알고, 중국어로 인사를 했다.
나는 마주 손을 흔든 다음 어떻게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느냐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재작년에 한국에서 유학해서 잘 알아보는 편이라면서 술을 같이 마시자고 꼬셨다.
“우리랑 같이 술 마실래? 내가 쏠게!”
원래 내 장점은 속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좀 계산이 없고 철이 없고 순진하고 뒤끝이 없고 아무 생각이 없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경계를 하지 않는다…. 생각이 있었으면 즉흥적으로 원 웨이 티켓을 끊고 여기까지 날아오질 않았겠지. 당연히 나는 좋다고 했다.
갑자기 술을 함께 마시자고 하기에 흑심이라도 있을까 하는 일말의 경계심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한 남자는 대뜸 자신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새신랑이라는 점을 밝혔다. 그의 와이프는 스페인 출신으로, 그가 사진을 보여줬는데 엄청난 미인이었다.
두 명은 그와 친구로 핑크플로이드의 광팬이었다. 게다가 앨라니스 모리셋도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음악 취향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은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강요하는 면이 있어서 대화하기에 좋은 상대는 아니었고, ‘쇼타’라는 이름의 남자가 상대를 편하게 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쇼타는 소울메이트 이야기를 했다. 전 여자친구, 전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둘 다 자신에게는 100%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하루키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4月のある晴れた朝に100パーセントの女の子に出会うことについ)’을 예로 들었다. 나는 일본과 이렇게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하루키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지라 좀 놀랐다. 쇼타는 말했다.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포기를 하고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아니겠어?”
나는 한국의 결혼 문화를 떠올렸다. 나이가 찼는데 근처에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적당해서 결혼했다는 수많은 유부남녀들의 독백도. 쇼타는 말했다.
“난 너무 로맨틱해서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살기는 싫어. 그러느니 그냥 혼자 살 거야.”
“그래? 타협은 싫다는 거야?”
“응, 100퍼센트와 살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 같아.”
그의 눈동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라서 중앙에 노란색이 50%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녹색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흔치 않은 색의 조합이 어우러진 데다 내부의 검은 홍채가 포인트를 줘서 마치 박제한 보석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하루키의 글이 사실은 100%의 상대방을 만나는 내용이 아니라, 100%의 상대방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놓치는 내용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빠진 함정에서도 어떻게 빠져나오면 좋을지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잠수이별자는 내게 100%가 아니었다. 사실 50%도 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겪어온 사람들에게 퍼센트를 먹이는 것은 조금 미안한 행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돌아보면 100%에 가까울 정도로, 하다못해 75%나 85%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식은 그가 연락을 끊는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에게 어딘가 심드렁하다는 점을 그가 느껴서 떠나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나는 그의 얌전하고 자기 할 말 안하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성격이, 편안했지만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조용하게 흘러갔고 나는 이것이 오래 된 친구같아진 나이든 커플이 한 벤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평화롭다고는 생각했지만, 정열적으로 상대의 눈을 계속 바라보는 이전 연애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위화감을 느꼈었다.
나는 버려졌지만, 형식은 그러했지만 혹시 그를 버린 것은 내 쪽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나는 쇼타가 따라준 술을 홀짝였다. 무슨 소리, 어디서 약한 소리를 하고 있나,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의 잠수 행동이 무례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소한의 예의가 없이 행동하는 것으로 그 소외감과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나? 그는 선택을 했다. 나의 본인에 대한 평가를 최악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선택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비난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쇼타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지평선에 눈길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