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전화 하지 않는 사람 한 명 추가요

by 위키별출신

첫 버스킹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수준이 높다. 나는 2년 전에 필리핀의 바에서, 그리고 6개월 전의 러시아의 뮤직 라이브 카페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과 비교해도 수준이 높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필리핀의 경우 음식 가격이 우리나라의 두 배 정도 되는, 꽤나 고급 레스토랑의 연주였으니까 그 정도급의 연주자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실연을 잊으려고 간 건 아니었고, 더위에 지쳐서 날아갔었다. 난 8체질에서 금이 나오기도 하고, 워낙 더위에 약한 편이다. 이럴 바에는 잠깐 윗동네에 갔다 오는 게 낫겠어! 라고 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러시아에 있었다. 순식간에 10도가 떨어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 동네에서 가장 팬시해 보이는 라이브 클럽을 찾았다. 음향 시스템은 한국만 못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지만, 실력은 진짜였다. 감탄하면서 두 시간짜리 영상을 찍었다. 물론 돌아와서 다시 감상하려고 하니 녹음 상태가 별로라서 바로 삭제해버렸지만.


나는 거리 버스커들의 실력을 체크하여 자신감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버스킹의 메카인 홍대는 사실 돌아다니다보면 실력이 예상 이하인 사람이 꽤 많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갤러리를 쥐고 흔드는 능력은 뛰어나도 실력은 없는 뮤지션도 종종 눈에 띄고 말이다. 좀 핫하지 못한 골목에 가면 음정이 삑사리 나는 공연도 흔하다. 지하철 공연도 편차가 좀 있다. 이렇게 실력있는 팀이 왜 지하철에서 공연하지, 라는 감탄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고 동네 발표회 온 거냐, 도대체 그런 와중에 본인들 영상은 왜 찍는 거지?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쓰려고? 지금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팀도 분명 있다.


나도 잘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잘 하지도 못하는 나보다도 못하는 팀들이 꽤 있는 데다, 그들도 거리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버스킹 하기에 너그러운 장소인 셈이었다.


이곳은 그에 비하면 좀 어려운 장소였다. 트빌리시, 루스타빌리 등지가 관광객과 유동인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해서인 것인지,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이 원체 기본 실력이 좋아서 인지는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사람 기를 확 눌러버리는 공연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목격되는 공연자들의 99.9%가 서양인이었다. 원체 동양인 자체가 드문 동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 명도 못 볼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는데.


나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호스텔에서 작은 공연을 했다. 별 것은 아니고, 호스텔 투숙객을 대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거다. 이미 잠깐 대화를 해서 안면을 튼 사이이기도 하니 편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다. 게다가 원래 여행자들은 오픈 마인드에 예술을 즐기는 자들이 많지 않던가. 당연히 내 공연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이때 길을 잘못 들었었다. 공연이라는 건 상대와 나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곡만 한다면 공감과 소통을 구현해 낼 수 없다. 그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도 연주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호스텔에서 무려 ‘한국곡’으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그같은 자기중심적인 선곡이 거리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라는 헛된 기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한 망상이다.


몇 번의 공연 덕분에 나는 호스텔에서 꽤 알아주는 존재로 등극해 있었다. 밥과 마리를 만난 것은 그때였다. 밥은 독일 출신으로 원래는 금융계에서 일을 했던 삼십대 초반의 남자였고, 마리는 비슷한 나이대의 스웨덴 여성으로 페이스페인팅이 특기였으며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우리는 함께 협업하여 나는 연주를 하고 마리는 페이스페인팅을, 밥은 호객 행위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둘은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내버려두고(전날 술을 마셔서…하하) 페이스페인팅 행사를 열기 위해 역 앞으로 갔다.


그러나, 원체 누구를 빼놓고 가면 고소하게도(?) 뭐가 안 풀리지 않던가. 그들의 행사는 완벽하게 실패였다.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마리는 거의 울 것같이 굴다가 밖으로 나가버렸고, 밥은 담담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사람들이 페이스 페인팅을 해 준다고 해도 믿지 않아서 두 시간이나 호객에 공을 들였지만 성과가 없었어. 나중에는 무료로 해 준다고 해도 아무도 호응을 안 해주더군. 결국 마리가 내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해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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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 날에 나와 함께 거리에 나갈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울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역시 상심한것은 분명해보였다. 나는 위로하고 기분 전환을 해 주려는 차원에서 방 안에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던 피아노를 커다란 거실로 들고 왔다. 자우림의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불러 주자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가사도 모를 텐데 뭣 때문에 저렇게 되었지? 내 공연에 감동해서 아닌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이날 비로소 나는 그가 조지아에 머물러 있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정확하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내 짐작에 그건 연인이었던 것 같다. 둘은 함께 하이킹을 다니는 걸 좋아했고, 특히 밥은 캐나다와 아일랜드가 합작해서 만든 드라마 바이킹스에 나오는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역의 트래비스 핌멜처럼 사자 갈기같은 진한 금발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외모를 강변하듯 좀 거친 종류의 산행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산에 들어가서 30박 31일 있다가 나오는 수준?


그간의 그의 행적을 잠깐 검토해보니, 여행 다니고 산행으로 연락두절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흘렀고, 자연스럽게 없던 사이가 되어 버린 모양새였다.


“틀어진 사이를 바로잡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나. 연락하면 날 받아줄지 어떨지도 모르겠고.아직도 고민하고 있어. 우리 사이는 끝난 걸까?”


“얼마나 지났는데?”


“육 개월은 넘었고, 거의 일 년이 다 돼 가.”


뭐라고?


"원래 조지아는 우리 둘이 약속했던 곳이야. 조지아엔 카즈베기 등 아름답고 험악한 산이 많거든. 이곳에서 하이킹 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어. 그래서 이맘 때쯤에 가자고 일 년 전에 약속했던 거야. "


“산에 가면 바로 만나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그런 기막힌 우연을 바라면서 조지아에 온 미련천만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렇게 미련이 남을 정도면 전화를 하면 되잖아. 나는 새삼스레, 이곳에 오기 전에 잠수 이별자에게 전화를 한 통 남긴 것이 굉장히 현명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그를 잊어가다 못해 떠올리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물론 그가 100%의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내가 할 만한 행동은 하고 떨치듯 그곳을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어졌다. 일 년 전의 인연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눈앞의 남자는, 갈기 같은 수염을 길렀음에도 불구하고 불쌍할 정도로 여리게 보였다.


“전화 해. 그러지 말고.”


나는 그의 푸른색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 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였으며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간신히 울음을 참는 게 틀림없었다. 이는 낮에 봤던 장면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몇 시간 전 오후에 그는 이 호스텔의 거실에서 자신이 산에서 지내면서 잡았던 동물들 얘기를 하면서 군용 나이프를 꺼내 보였었다. 좌중은 그에게, 그리고 그가 묘사하는 거친 삶에 압도되었었다. 사람을 일반화하기는 싫지만 그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쌓았던 인간군상에 대한 데이터와 그에 대한 내 판단이 떠올랐다. 강한 척 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약한 사람이라는 전제 말이다. 그는 고개를 수그렸다. 나는 그가 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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