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진 거리는 이전과 인상이 달랐다. 화가들이 차지했던 계단은 이제 텅 비어 있었다. 저녁 열 시가 되자 통행량이 드물어졌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영업이 될 리 만무하니 집에 돌아간 거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나는 실험적 첫 번째 버스킹을 하려는 거고.
나는 메고 온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계단 청소를 자주 하지 않는지 시큼한 냄새가 나서 내려놓기 싫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다. 피아노를 치려면 적어도 어딘가에 앉아서 연주를 해야 하는데, 주변에 의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계단에 앉아서 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 키의 절반만한, 가로 길이가 1m인 검은 색 포터블 키보드를 꺼냈다. 자리에 앉은 다음 키보드를 내 무릎 위에 올려두고, 서스테인을 아래 쪽 계단에 둔 다음 전원을 넣었다. 이 과정은 몇 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벌써 두 세 명이 가던 길을 멈춰서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갈 테면 가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앰프도 없는 공연을 시작했다. 조지아에서 앰프를 사용한 공연은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다. (아직도 조지아에서 공연하고 있는 지인들의 언급에 따르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다행히도 계단 위쪽으로 넓은 천장이 받쳐져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콘서트홀에 있는 효과, 즉 다량의 리버브가 들어가 주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블랙로즈의 다음은 한국곡이었다. 좀 듣다가 떠날 것이라 예상한 갤러리가 떠나지 않고 내 앞에 붙잡혀 있는 데다 사람이 늘어나니, 내 긴장감도 더불어 늘어났다. 나는 두 번째 곡 후반부부터 자잘하지만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했지만 이럴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넘어가는 게 최고라는 걸 그간의 공연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 번째 곡을 마치자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도 안 풀리고, 물도 마셔야 되고, 더 연주를 해야 하나 생각도 해봐야 하고 말이다.
드디어 해냈다. 나는 연주를 멈추고 사람들을 향해 여유있는 척 싱긋 웃어보였다.
원래 첫 번째가 가장 어렵다. 두 번째부터는 점점 쉬워져서, 열 번째부터는 긴장감조차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혼자 공연한 게 아니라 연주자 두 명이 함께였다. 20대 초반인 남자애가 퍼커션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좀 있는 언니가 피아노를 맡았다. 나는 피아노 겸 보컬이었다. 이쯤 되면 사운드가 그래도 악기 하나보다는 다채롭게 들리기 때문에, 설령 실수를 한다고 해도 예민한 사람들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못 알아챌 확률이 높아진다. 멤버 둘은 공연 20분을 앞두고 얼굴이 새파래지는 게 보였고, 나 역시 긴장되었다. 카피 밴드의 첫 무대치고는 규모가 좀 있었다. 버스킹이 아니라 지역 축제의 공연이었으니까.
그날 공연은 솔직히 말해, 엉망이었다. 평소에 잘 하던 것도 규모있고 사람 많은 곳에서 하게 되면 긴장으로 더듬게 된다. 우리가 딱 그짝이었다. 피아노 멤버는 나와 합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잊고 따로 놀았으며, 나와 피아노가 박자가 미묘하게 어긋나자 퍼커션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삼십 분 가량의 공연이 끝난 다음, 세 사람 모두 이마에 땀이 번들번들했다.
나는 첫 공연이라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멤버들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했지만, 그게 안 통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스무살 초반 청년의 섬세한 마음은 이미 상처입은 상태였다. 그는 두 번 인가 우리와 더 연습을 한 다음 팀을 탈퇴해버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음악적 노선이 맞지 않는다, 였지만 사실 카피 밴드의 노선이라는 게 그게 그거인 데다 웬만하면 맞춰갈 수 있다. 앨범 내는 것도 아니고 한 곡은 퍼커션이 좋아하는 곡을, 다른 곡은 피아노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는 식으로 맞춰갈 여지가 많은 것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의 연주는 아주 훌륭했어. 나는 다음 곡을 뭘 해야되지, 하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 공연이 끝났다고 생각한 듯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한 사람도 보였다. 뭐가 됐든 빨리 다음 곡을 시작해야 되나 싶어 조금 조급해졌다. 그런데 그 때, 왼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박수소리는 빠르지 않고 느렸으며, 온 몸의 힘을 쥐어짜내서 간신히 박수를 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나는 앞에 모여 있는 청중에만 신경을 썼지, 내 옆에서 공연을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옆을 보니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 뒤로, 기둥 뒤에 앉아 있는 남자도 보였다. 대놓고 공연을 관람하고 싶지는 않지만 호기심은 동하는 소심한 행인1이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칠순은 넘어보였다.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있었으며 옷차림은 무난하고 평범한 검정과 회색의 버무림이었다. 그녀는 라탄으로 엮은 듯한, 과일을 담을 때 쓰는 갈색 바구니를 하나 들고 있었다. 내가 공연을 끝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녀는 한 걸음씩 느리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몸을 거동하기 어려운 것이 틀림없었다.
내게 다가온 그녀는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를 사용해서 말을 붙였다. 회색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고, 표정은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조지아어인가? 나는 영어로 답했고, 그녀는 영어를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다시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왔지만, 내가 이해하기에 조금 길었다. 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 그러니까 나(야)라던가 즈드라스부이쩨(안녕)라던가 하라쇼(좋아)정도밖에 모른다.
내가 자신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 그녀는 실망했지만, 우리에겐 바디랭귀지가 있었다. 그녀는 양 손 엄지를 치켜 세우면서 수뼈르(Super, 러시아인이 좋다고 할 때 잘 쓴다)라고 한 뒤, 눈으로 팁박스를 찾았다. 그러나 나는 팁박스조차 없는, 오늘 처음 이곳에 버스킹 나온 햇병아리였다.
그녀는 내 오른손을 부드럽게 펴더니, 거기에 팁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내가 당황해서 내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반대 쪽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안녕, 공연은 끝난 거야?”
내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버스킹이 끝나고 사람들이 말을 붙여오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답을 하다가 할머니가 있었던 쪽을 바라봤다. 움직임이 느렸기 때문에 아직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본 것이었는데, 이미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고마웠다. 뭐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내가 말을 해 봤자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알고 있다. 그래도 더 노력해 보고 싶었다. 최초로 받은 팁, 그리고 팁박스가 없는데도 굳이 쥐어주고 간 마음이 고맙고 궁금해서였다. 나는 그녀가 쥐어주고 간 동전을 검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뭔가 영험한 부적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