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대책없어서 생긴 사건
경유 비행기 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것처럼 승무원님의 윤허를 받아 물을 먹고 또 먹고 하면서 조지아에 도착했다. 조지아는 터키 위, 불가리아 옆에 위치한 나라다. 저렴한 비행기만의 장점으로 저녁 8시에 공항에 떨어져 갑자기 호스텔을 찾아야 하는 나 혼자만의 스릴러가 시작된다. (무계획하기 때문에 호스텔도 공항에서 찾는 나쁜 버릇이 들어 있다) 고생 끝에 시내 중심에 도달. 왜 고생이었는고 하니, 말은 안 통해, 심 카드는 살 수 없어(이미 심 카드 매장 문 닫았음), 인터넷도 안 되고 영어도 안 통하는 데다 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캐리어를 두 개 끌고 큼지막한 디지털 피아노를 메고 있었다. 누가 얼핏 봐서는 중국에서 도망쳐 나온 전쟁난민쯤으로 보였을 게다. 캐리어 두 개를 동시에 끌어 보셨는가? 박자가 안 맞아서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춘다. 게다가 디지털 피아노는, 가방디자이너가 피아노를 한 손에 가볍게 들고 다니는 괴력자를 모델로 디자인했는지 짧은 손잡이만 달려 있어서, 손에 쥔 채 손을 뒤로 넘겨서 메고 있는 형국이었다. 음. 당연히 손가락에는 피가 통하지 않는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트빌리시 중심가, 푸쉬킨 스퀘어에 떨어졌다. 이름이 익숙하겠지만 알렉산드르 푸쉬킨이다. 재기 넘치는 소설과 시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장난꾸러기같은 러시아인. 그가 조지아를 극찬했기 때문에 시내 중심가에 떡하니 그의 이름이 달려 있다. 그곳에 두 개의 캐리어와 디지털피아노를 가지고 거의 11시경에 시내 중심가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호스텔을 찾는 게 일이다. 짐 때문에 낑낑대고, 처음 마주한 도시에 경탄과 공포가 엇갈리는 기묘한 감정에 심취한 나머지 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어느 정도의 울림이냐면. 음. 한국은 너무나도 멀고 내 손에는 두 개의 캐리어가 있지만 호스텔이 도무지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태인데, 거기다가 핸드폰이 없어졌으므로 호스텔을 찾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동시에 수중에 돈 한푼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음,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정말로 순수하게 이 나라의 돈이 한푼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 돈을 어디서 뺄 수도 없다는 뜻이다.
무슨 뜻이지? 여행가려면 환전을 먼저 해야 하고, 당연히 현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냐?
그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나는 상식적인 인간이 아니다. 충동구매로 여행을 지르는 인간이 환전은 제대로 했겠는가? 하지 않았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시간이 도대체 없었다. 정확하게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아마 4,5일 뒤의 티켓을 끊은 후에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도 처리하고, 짐도 싸고 하느라 환전은 그만 깜박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가난해도 어느정도의 현금은 있었는데, 그건 국내 전용 체크카드 안에 들어있다. 물론 글로벌 체크카드는 가져왔다. 이 나라에 도착한 뒤에 모바일 입금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내가 여행 내내 쓰리라 다짐한 글로벌 체크카드의 현재 잔액은 1,000원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 번 변명을 하지만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나란 인간은 원래 이렇게 살아온 듯하다. -_-;
어쨌건 정리하자면 현금이 없고, 현금을 국내 은행 통장에서 송출하기 위해서는 핸드폰이 필요한데(이체시 확인 문자가 온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걸 입력해야 이체가 가능하다)문제의 핸드폰이 없다. 그런 고로 이체를 할 수 없다. 이체를 할 수 없다면 수중에 있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그 전에 오늘 호스텔에 가더라도 결재할 돈이 없다. 오랜 시간을 거쳐(경유경유를 했으니)배도 고픈데 밥도 사먹을 수 없다는 건 덤.
친구에게 계좌에 돈 좀 넣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국제전화를 해야 하는데 휴대폰이 없다.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전화라도 하면 좋겠지만 나는 이 나라의 말도 못하고 지금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리고 수중에 돈이 없는데 국제전화카드는 어떻게 사지?
이런 식의 악순환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당황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