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키우기 +D 107
밤중 수면 텀이 여섯 시간으로 늘어났던 아기가, 오늘 새벽에는 네 시간 만에 깼다. 퇴행했다!라고 말하기에는 부적절한 느낌. 역시 아기의 발달은 일직선이 아니구나! 아기는 나선형으로 성장하고, 커간다.
한 달 전쯤에 아기는 기저귀 갈이대에 매달아 놓은 바나나인형을 오른팔과 손으로 팡팡 치는 것을 좋아했었다. 처음에는 조준이 잘 안 되다가 점점 능숙해져서는 계속 손으로 쳐대는데, 나중에 커서 권투 선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팔의 조정 능력이 조금 더 발달하고 손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면서 바나나인형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앙에 매달아 놓은 토깽이친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르면 "빼액~" 소리가 나는 토깽이 인형을 계속 관찰하다가, 심심해지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엄마가 가서 인형을 눌러줬고, 몇 번 눌러주고 나면 아기는 만족해하면서 칭얼거림을 멈췄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수 차례하고 나면 아기는 졸려서 눈이 빨개졌고 낮잠을 재우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한동안 잊혔던 바나나인형을 아기가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시 주먹으로 팡팡 치면서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인형의 옷자락을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바나나 인형 역시 잡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고 배를 누르면 "삐옥삐옥" 소리가 나는 놀이용 인형이다). 아기의 놀이는 조금씩 진보하면서 되풀이된다.
놀이에 대한 고민, 시작...?
아기가 점차 커감에 따라,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임신 중에 아기용품을 준비할 때는 놀잇감에 대한 부분은 고려되지 않았고, 필수품이라 여겨지는 것들 위주로 준비하는 것만도 이미 수십 여 가지였다. 기저귀, 기저귀갈이대, 역류방지 쿠션, 수유쿠션, 수유패드, 유축기, 아기 옷, 속싸개, 겉싸개, 아기양말, 우주복, 가제 손수건, 아기샴푸, 아기로션, 아기체중계, 스와들업, 아기베개, 목욕타올...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자잘한 것들. 그런데 아기가 커가면서 엄마랑 상호작용을 하고 세상을 탐색하며 감각을 발달 시킴에 따라 이제는 놀이에 대한 부분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모든 임신 출산 육아용품을 당근으로 구입했는데, 당근에 올라오는 놀잇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형형 색색의 화려한 놀잇감들. 아기가 정말 잘 놀 것 같은, 그래서 엄마의 육아 수고를 덜어줄 것만 같은 꽤 비싼 놀이용품들.
하지만 나는 그 놀이용품들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가격이 비싸기도 했거니와, 덩치도 크고 실내 공간을 장악하는 느낌. 아이가 커가면 커갈수록 장난감은 더 커지고, 비싸지고, 화려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초보 엄마이고, 아기에 대해 잘 모르고, 우리 아기도 평균의 발달을 따라가니까. 남들 하는 것 정도는 나도 해줘야 할 것만 같네? 다행히 근처에 군에서 운영하는 아기장난감 대여소가 있어 이 주간 다양한 장난감들을 빌릴 수 있었는데, 역시 국민템이라 불리는 것들도 있어서 크고 작은 장난감들을 대여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아기는 빌려온 장난감들에 처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며칠이 지나자 움직이는 대형 모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오고, 불빛이 나오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오오~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 대형 모빌은 한동안 꿀템이었다. 틀어놓으면 아기가 한동안 바라보니 엄마는 부엌으로 가서 꽤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다. 그 꿀맛 같은 엄마의 시간을 벌어주는 효자템!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장난감은 아기를 위한 것인가, 엄마를 위한 것인가. 이 주간의 대여 기간이 끝나고 다시 그 장난감을 재대여하고 싶었던 마음 안에는 아기가 이것을 너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기 때문보다도, 엄마의 시간을 벌어주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음, 이상한데? 하지만 아기가 싫어하지도 않을뿐더러 나쁠 거 없잖아? 이 장난감은 엄마와 아기, 둘 다를 위한 것이라고 치자, 하는 마음으로 재 대여 하기를 두 번. 합치면 총 한 달 반의 기간을 이 장난감과 함께 했다.
그러나 아기는 금세 이 장난감에 적응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아직 척추가 발달하지 않아 몸통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대형 모빌은 아기에게 움직일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저 빙글빙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러하니, 아무리 음악이 다양하게 나와도 아기 입장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겠다. 이 즈음에 아기가 오히려 흥미를 보였던 놀이는 바나나친구를 손으로 치는 것, 그리고 다이소에서 사 온 강아지용 장난감(별 모양의 인형 아래로 스프링이 달려있어서 톡 건드리면 반동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용품)이었다. 역류방지쿠션 위에 눕혀놓고 아기 발 쪽에 두꺼운 책들을 쌓아 올린 다음 이 스프링장난감을 발 쪽에 대어주면 발을 막 움직이면서 팡팡 밀어냈다.
대형모빌과 바나나친구, 스프링 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아기의 움직임을 유도하는가", 그리고 "엄마의 개입이 때때로 필요한가"였다. 바나나친구도 아기가 심심할 만하면 가서 삑 눌러주어야 했고, 스프링 별은 아기가 팡팡 차다가 발의 가동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쌓아둔 책 아래로 떨어지면 엄마가 가서 다시 세팅을 해줘야 했다. 실제로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밥을 먹다가 아기에게 가서 아기의 놀이가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각종 도움을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아기는 한동안은 스스로 집중을 하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가 그 행위가 충분하게 느껴지면 다음 행위를 위해 엄마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임신 중에 선물 받았던 아기체육관이라는 장난감을 개봉해 보았다. 내가 직접 구입할 것 같지는 않은 장난감이었지만 이 역시 국민템이라고 하니. 한번 살펴보자는 심산이었다. 구성은 복잡하지 않았고, 무게도 가벼웠다. 아기를 누였다고 보았을 때 상체 쪽으로는 둥근 바가 설치되어 있어 플라스틱 인형과 고리들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이 장난감이 가격이 나가는 이유는 아기 발 쪽의 구성 때문인 것 같은데, 아기 발 밑으로는 피아노 건반처럼 아기가 발로 누르면 소리가 나는 널찍한 건반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기는 눈으로는 모빌을 보고, 손으로는 고리를 잡으면서 발로는 소리건반을 누를 수 있다.
"OO야, 이거 한번 해볼까?" 아기를 눕히고 반응을 지켜보았다. 역시 처음에는 낯설고 화려한 이 환경을 당장 좋아하지는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시도해 보았을 때, 아기는 자신의 발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다리를 쭉 뻗어 건반을 펑펑 쳐 대더니, 점점 흥분을 하면서 나중에는 화를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짜증을 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뿔싸. 저녁 시간대에 흥분을 하게 된 아기는 그날 밤에 잠을 짧게 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난감은 아기를 흥분시킬 수 있으므로 10~15분 정도만 놀게 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 이후로 그 장난감을 다시 집어넣었다. 왠지 우리 아기에게는 맞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아기를 너무 흥분시키는 장난감이라.. 놀이는 적절한 흥분과 속도, 이완이 함께하는 행위가 아닌가? 점점 흥분한다는 것은 점점 각성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놀이라기보다는 스포츠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국민템이라 불리는 것들이 우리 아기에게는 왠지 맞지 않는 느낌. 그렇다면 우리 아기는 무얼 하고 놀아야 할까?
언어의 놀이
100일이 지나면서 엄마와 아기 사이에는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기는 옹알이가 엄청 늘어서, 소리에 자음이 섞이기 시작했고, 마치 엄마에게 "이랬어요, 저랬어요" 이야기하듯이 어조가 생겨나고 점차 길어졌다. 우리 아기는 옹알이로 엄청 이야기를 하는구나! 앞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 되겠어. 그럼~ 엄마 닮았으면 그렇겠지. 나도 아기에게 옹알이로 호응을 해주기 시작했다.
"에글 아거 아거 코애걸 아코 애아코~!(아기)" "아거아거?(엄마)"
"아거 응~~ 가! 으으으애~!(아기)" "아거 응~~ 가?(엄마)"
"하오오이 엘레엘 레~~(아기)" "오~~ 엘레엘 레!(엄마)"
"응게 응게 을렐레! 흐야으 을레!(아기)" "응게 응게에~~(엄마)"
"엥거이아~(아기)" "엥거이아~?(엄마)"
아기는 엄마한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대화를 했고, 재밌었다. 아기 어를 따라 하면서 대화하다가 또 바꿔서 엄마는 한국어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영어나 불어로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스페인으로 순례자길 여행을 떠났을 때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는 하루가 단순해서, 하는 일은 새벽에 길을 나서서 하염없이 걷다가 그날 목적지에 도착하면 짐을 풀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짐을 풀었을 때는 그나마 볼거리가 있지만, 깡시골에 짐을 풀었을 때는 정말 할 일이 없다. 어느 날은 깡시골에 짐을 풀고 잠시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스페인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 사투리가 섞였는지 간단한 단어조차 못 알아듣겠는 발음이었다. "쏘리, 아이캔 낫 스피크 스페니쉬!"라고 말해보았자 할머니도 못 알아듣는 눈치다(당연하지, 영어로 말했으니). "로 씨엔또! 노 아블로 에스빠~뇰!" 알고 있는 스페인어를 써서 내가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걸 알렸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할머니는 더 신이 나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니, 그냥 나에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허허.. 무슨 말인지. 하지만 할머니는 굉장히 좋아하셨고,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20분이나 들어주었다. 말 그대로 "들어주었다".
그렇게 보면 언어 이전의 "소리"는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는 것 같다. 할머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실 한국인과 한국말로 대화를 해도 그 말 뜻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각자 할 말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남편과 한국어로 대화를 하지만 정말 대화가 안 된다고 느낄 때도 있는 것이다. 그 광경 속의 할머니와 나는 그저 소리로, 어조로, 감정으로 소통하고 교감했다. 내가 이제 가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자리를 피할 때, 할머니는 슬퍼했다!
아기와도 마찬가지. 아기는 지금 한국어를 모르고, 아기 어를 쓰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한국어를 시작하겠지.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아기는 나에게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고, 나는 그것에 호응을 하며, 나 역시 아기에게 내 의사와 감정을 전달한다. 그렇게 소리와 언어를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환경과 그것에 대한 반응과 반영이 있는 환경이란 아기에게 충분한 놀이의 세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상은 곧 놀이
어느 날에는 세탁실 건조기에서 빨랫감을 잔뜩 꺼내어 누워있는 아기 옆에 내려놓았다. 아기는 하얀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천장에 뭐가 있다고 이렇게 흥미롭게 지켜보는 거야아~?". 너무 귀엽고 신기한 존재. "OO야, 엄마랑 빨래 개면서 놀까?" 나는 집안일을 해야 하니까놀이인 척 해보자. 그런데 아기는 빨랫감을 아주 흥미롭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잠시 아기의 시각으로 이 빨랫감을 살펴보니 그것은 '색색깔의 각종 원단이 뒤섞인 거대한 직물 덩어리'였다. 아직 이 세상에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에게는 고정관념이란 건 없다. 아기에게는 이 빨랫더미가 집안일이 아니고 새로운 광경, 새로운 놀이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아기가 놀 수 있게 해 보자! 수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노란색의 보송보송한 수건. 먼저 아기 배에 덮어주면서 말을 걸었다. "OO야, 이거 느낌 어때? 아직 따뜻하지~ 노란색 마음에 들어? 이거 보송보송한 느낌 한번 만져볼까?" 아기 손을 들어 만져보게 해 준다. 아기는 그 느낌이 좋은지 웃는다. 이번에는 남색 수건을 집어 들고 엄마 몸을 가렸다가 내리면서 "엄마 없다~~~ 가, 있다!" 놀이를 했다. 역시 좋아한다. 수건을 한번 접어 반으로 만들고 다시 엄마 없다, 있다 놀이를 했다. 한번 더 접어 엄마 없다, 있다. 이번엔 삼등분으로 접어 엄마 얼굴 크기만 해진 수건으로 엄마 있다, 없다! 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수건을 얼굴 위로 번쩍 들어 올려 "엄마 있~~~~~다!"를 해주었더니 아기가 "까르르르르르!!" 소리 내어 웃는다. 지금까지 이토록 좋아했던 놀이는 없었다.
빨래를 개다가 수건에서 기다란 실오라기 하나가 나왔다. 버리려다가, 아기가 가느다란 실을 볼 수 있나 궁금해서 아기 눈앞으로 가지고 갔다. "OO야, 이거 보여?" 실을 위에서 늘어뜨려 좌우로 흔들흔들~ 흔들어보니 아기의 눈동자가 실을 따라간다. 아, 보이나 보다. "이게 뭘까? 실이라는 거야~" 아기는 이 작고 가벼운 실에도 흥미를 보인다. "재밌어? 한번 이걸로 놀아볼까?" 나는 실을 꾸겨서 굴려서 작게 공처럼 만들었다가, 실 끝을 살살 잡아끌어 다시 기다랗게 만드는 걸 보여준다. 이 놀랍도록 사소한 과정이 아기에게는 엄청난 흥밋거리가 되었다. 아기는 신기해한다.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이게 뭐야? 와 신기해! 작아졌다 커졌다 하네!'
그러고 보니 아기와 내가 사는 이 집 안, 일상은 모든 것이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기의 눈으로 본 내 일상과 삶은 다채롭고 가득가득 차 있다. 이미 놀꺼리가 세상이며, 온 세상이 놀꺼리인 것이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1938년에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가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책에서는 놀이가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말한다. 놀이란 일과 대비되거나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일과 여가와 신앙과 삶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라는 것이다. 하루 8시간 근로, 1시간 휴식, 연차, 월차, 휴가, 연차수당, 근로소득, 기본소득 등의 어휘가 놀이라는 어휘보다 훨씬 가까워진 한국의 성인들에게 이 말은 사치스럽거나 또는 현실과 동 떨어진 "뭔 소리야?"의 것일 수 있다. 당연하다. 나 역시,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진행하면서 따졌던 것이 숫자, 수당, 근로시간이라는 개념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그리고 나 역시 과거의 한 아기였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나 역시 일상은 흥미로운 것들,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신나는 곳이었다. 그 안에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고, 점차 커감에 따라 상처와 좌절이라는 새로운 것들도 겪어내야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세상이란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20대 때까지 내 삶의 모토는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해보자"였고, 자잘한 온갖 알바를 해보았으며, 정말이지 좋은 경험뿐 아니라 나쁜 경험까지도 나는 다 겪어보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가진 것이 잠재력 밖에는 없었고, 그랬기에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불안과 우울을 모르는 시간이었다(분노는 알고 있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이 세상에 써야 했지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내 길을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여기저기 이곳저곳 좌충우돌하며 "놀았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은 어땠을까? 내 기억으로는 우리 집에는 오늘날의 아기 키우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장난감이며 장난감 미끄럼틀이나 집, 매트 같은 것이 없었다. 나뭇잎이 장난감이었고 커다란 박스가 나만의 공간, 나만의 집이었다. 친척집 다락방이 숨어들어갈 비밀 아지트였고, 아파트 뒤(나는 아파트 키드였다) 잔디밭의 흙과 토끼풀이 놀잇감이었다. 나는 신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조금만 벗어나면 논과 밭이 있었고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었고,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이렇게 늙은 성인이 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쨍한 색감의 장난감들이 아니라 잠자리와 곤충,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던 벌레, 밟으면 바스락거렸던 낙엽, 그리고 쌓인 눈을 손으로 만지던 기억들이다. 조금 더 기억해 내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 온갖 "즐거웠던 것들". 물론 조금 더 컸을 때는 미미 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 인형 옷을 사기 위해 동전을 모으기도 했다. 친구가 갖고 있는 인형의 집이 너무 부러웠지만 너무 비싸서 눈물 흘리며 포기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그 미미 인형보다 그리운 것은 어느 날 집에 있던 아주 커다란 박스로 엄마가 집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던 마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보풀이 일어있는 낡은 천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스누피 인형, 수족관 안에서 서로 키스를 하던 물고기들(키싱구라미), 낮잠 자는 엄마 몰래 갖고 놀다가 쏟았던 간장냄새, 나를 덮고 있던 무거운 이불이 주던 안정감(내가 덮은 이불은 발가락 끝으로 만지면 부드러워 포근했다), 누군가 만져주던 귓불과 기분 좋아 잠이 들어버리던 그 느낌... 들이다. 조금 더 커서 놀이터에서 뛰어놀 때 즈음에는 해가 내려앉기 시작한 어스름과 동시에 주변의 집들에서 풍기기 시작한 밥 짓는 냄새, 점점 어두워져 친구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쯤에야 서로 안녕하고 집으로 향하던 꼬질꼬질한 나,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던 거센 빗줄기와 천둥번개가 기억이 난다.
자라오면서 보고 느꼈던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놀이였고, 놀이와 놀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는 삶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놀이였다. 영어가 너무 재밌어서 교과서를 외국인처럼 폼나게 읽거나 노래를 부르며 라디오 진행하듯 녹음을 하고, 그 녹음테이프를 반복해서 돌려 듣던 저녁 어스름 빛 속의 나는 정말로 놀이전문가였다! 언젠가 학교 다니는 일이 공부, 성적, 우열이 되어버리고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에는 놀이와 공부의 구분이 생겨났고, 그렇게 나는 놀이 전문가를 졸업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유년 시절의 온갖 기억들은, 내 몸과 마음을 구성하여 성인기 후반인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귓불을 쓰다듬어 본다. 아기는 이 느낌을 몸으로 기억하겠지, 나처럼. 그래서 나중에 애인이 귓불을 쓰다듬어주면 스르르 잠이 들 지도 몰라. 스와들업이나 속싸개가 몸을 눌러주는 느낌은 나중에 무거운 이불을 덮었을 때 안정감으로 되살아날지도 몰라, 나처럼. 아기가 커가면서 자신의 신체를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나 역시 아기와 놀아줄 수 있는 놀잇감 후보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아파트의 재활용품 정리함에서 아주아주 커다란 박스도 가끔 나오곤 하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아기가 좀 더 크면, 나는 그 박스로 아기만의 집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유년 시절이 소환된 지금의 나는 아주 따스한 기분이 든다. 그래, 그랬었지. 나는 꽤 행복했어.
지금 아기에게 필요한 것은 값비싼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내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한번 확신한다. 아가에게는 실오라기 하나조차 놀잇감이니, 필요한 것은 함께 놀아줄 사람. 상호작용해 줄 믿을 수 있는 존재 그뿐인 것이다. 아기에게 말을 건다. "OO야. 행복한 아기가 되렴. 그래야 그 힘으로 앞으로의 긴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거든." 네가 행복한 아기가 될 수 있도록, 엄마가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