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기와 흰 눈

+D 102, 아기에 대한 나의 사랑

by 마음의 안쪽



어제는 눈이 하루종일 펄펄 내렸다. 늦은 오전의 한때, 아기는 역류방지쿠션 위에서 순하게 놀고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만화를 그리며 "나와 아기와 흰 눈"의 시간을 보냈다(이렇게 그 순간만 보면 육아가 참 낭만적이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시간이 매우 짧다는 거). 그러고 보니 백석의 시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6년 전 시 외우기 모임에서 백석 시를 자주 외웠었다. 지금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활동을 했던 감성적인 사람이었구나, 새삼 느낀다.

눈이 훨훨 내리는 날이면 나는 훨씬 더 감성적이 되어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늘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간 나에게는 "나와--", 그다음의 대상이 없었다. "나와 남편과 흰 눈"은 왠지 이상해. 낭만적이지 않아. 남편이라는 단어는 감성의 단어가 아니었구나(남편,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대상이 생겼다. "나와, 아기와, 흰 눈"의 장면을 만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아기는 이제 102일, 내 안에서 나온 생경한 타인, 새로운 등장인물, 그래서 낯선 존재에서 이제는 나와 함께하는 존재, 시공간을 나누는 존재, 교감이 시작된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학술적 용어로는 그것을 "애착"이라고 부르나 보다. 나는 그런 단어보다 조금 더 감성적인 단어를 쓰고 싶다. 나와 아기는 그렇게 인생을 이제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며 관계를 쌓고 있다.



10년 전 나와 비슷한 때에 결혼을 한 친구가 2년 만에 아기를 가졌을 때, 나에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야. 너도 꼭 해봐"라고 말했었다. 임신, 출산, 육아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일일 거라는 건 이전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친구의 그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말이 10년 뒤인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되는 건, 그 친구가 정말 직설적이고 빈말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실제의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이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이 교과서 속의 언어에서 실제의 언어로 변모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10년 뒤, 정말 아이를 가지고, 뱃속에서 키우고, 낳고, 배 밖에서 기르는 이 경험은 정말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길 없는 모를 "나의 실제"가 되었다. 아기가 100일 즈음이 되면 아기가 뱃속에서 잉태되고 생겨난 지 1년 가까이 되는 때라고 한다. 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너라는 존재가 생겨난 지 1년이 지나고 있어'라고 말을 걸었다.




헌신




내가 10년 만에 아기를 가지고 싶었던 것은 왜일까.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오히려 결혼 전 10대 청소년일 때 가졌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참 외로웠다. 집안이 기울고 부모님의 관계가 잦은 싸움에서 오히려 냉랭한 것으로 바뀌고(상담을 공부한 지금은 부딪히고 싸우는 단계가 서로 관여하지 않는 냉랭한 단계보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가 다시 직업 전선에 뛰어들 때쯤이 꼭 내 사춘기가 시작되어야 할 중 2 정도였다. 그래서 내 사춘기는 시작되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서야 미리 겪었어야 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서로가 소원했다. 서로의 근황을 묻거나 챙기지 않는 채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이어나가야 할 과업이 되었다.

아빠는 실직자로 하루종일 집에서 담배를 피우며 티브이를 보았고, 엄마는 아빠 대신 나가 돈을 벌었다. 오빠는 학교에서 분노조절장애로(오빠의 표현에 의하면),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잔머리는 있어가지구) 맘에 안 드는 친구를 때리고 다녔고, 집에서는 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가 힘겨움의 돌파구를 찾을 때 나는 공부를 하는 것과 일기를 쓰는 것, 그리고 상상을 하는 방식으로 내 돌파구를 찾았다. 당시 상상 속에서 40대인 나는 아이가 둘이고, 내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고, 일에 대한 야망이 생기고, 관계에서 상처받고 만나고 헤어지는 가운데 그러한 따스한 상상은 아예 무의식 저편으로 물러났던 것 같다. 지금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의 영혼은 어딘가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았던 것 같다.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는 아예 잊혔다.

그러다 8년 전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에 대한 애도 작업은 머리로만 5년이 걸렸고, 몸으로 이동해 그 슬픔을 풀어내는 것은 3년이 걸렸다. 그렇게 8년을 보내고 나서야 이제 엄마가 그립고, 다시 슬프고, 조금은 다른 종류의 눈물이 나오는 진정한 애도 작업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엄마에 대한 애도 작업을 해나가면서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졌다."



이전의 나는 헌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삶을 살았다. 산다는 것이 쉬운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 삶의 초점은 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를 위한 걸 하는 삶이었다. 넉넉지 못한 환경이었으니 부모님으로부터 물질적 지원을 받는 것은 힘들었고,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끼고 아껴 조금씩 돈을 모으면서 내 앞길을 모색했다. 물론 사람들과 소통하며 교류하고 무언가를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헌신은 없었다. 받았으니 주고, 주었으니 받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마음이란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나 보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헌신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었다. 때문에 엄마가 가정에서 필요한 모든 헌신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런데, 길고 긴 엄마의 애도작업을 해나가며 상담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즈음에 나는 그렇게 헌신을 모르던 내 삶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이전 삶에서 받은 상처와 그 치유, 이런 말들도 이제는 지겹다고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치유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제 더 이상 상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징징거림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시절이 도래했다.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누가 누구를 치유하는가! 나는 그저 지금까지 나름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온 만큼은 더 살 것이다. 그렇게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없었던 것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살아있다!





아기가 생겼다. 그런 마음들이 내 안에서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엄마에 대한 감정을 몸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한참 하던 때, 아기가 남편과 나에게 찾아와 주었다. 아기가 잉태되기 며칠 전쯤일 것이다. 아침에 명상을 하는데 복부 쪽에서 노란빛이 따스하게 번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사랑스럽고 따스한 기운이 복부에서 명치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난 며칠 뒤에 임태기 두줄을 보고는 얼마나 놀라웠는지 잠시 멍하니 화장실 문 앞 바닥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실감이 안 났기 때문에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할 시간이 잠시 필요했다. 지금이야 육아가 너무 힘들어 '내 삶이 없다', '둘째는 언감생심' 이러고 있지만, 딱 일 년 전 아기가 찾아와 주었을 때의 기쁨이란 지금 떠올려도 벅차오른다.




아, 아기가 잠에서 깼다. 엄마를 부른다. "에! 에!" 기저귀갈이대에 눕혀놓으니 "에에, 아겨~!"라고 무언가 말을 한다. 옹알이가 더 구체화되고 있다. 자음이 섞이기 시작하고, 자음의 종류가 늘고 있다. 목소리가 참 곱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서, 아침 의식을 행했다. 가제 손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얼굴을 닦아주고 손을 닦아주고 코뻥으로 빨아들여 마른 코딱지를 빼 주었다. 아기 온몸을 마사지하면서 각 부위를 말해주었다. "여기는 배~ 여기는 발~ 여기는 팔~ 여기는 어깨네~~?", "어때? OO 몸이 느껴져?" 아기가 자신의 몸을 깨닫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 생각이 일치하는 삶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내 아가는 내가 오랫동안 못해왔던 중요한 것들을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잘 알게 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머리보다는 심장으로 살아가기를.

그런데 아기는 얼굴 닦는 걸 정말 싫어한다. 그런 것 마저도 나를 닮았다?! 어린 시절에 하얗고 통통한 모찌처럼 생겼던 나는 학교 선배며 어른들이 허락도 없이 내 얼굴을 만지거나 누르고 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아빠가 기분 좋을 때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고, 옛 남자친구가 툭하면 얼굴을 쓰다듬는 것도 싫어했다. 정말 신기해, 그런 것도 닮은 거야? 아기에게 말했다. "엄마 좋아? 엄마도 OO 좋아~" 못 알아듣는 눈치다. 그래서 다시 말해본다. "사랑한다고. OO도 엄마 사랑해?"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엄마가 떠오른다. 아아.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만 자식한테 주는 것만이 아니다. 나도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사랑했으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기는 이제 곧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것이다. 벌써 때때로 나를 보는 눈빛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엄마와 아기의 사랑은 끈끈하다. 사랑의 종류가 여러 개라는 걸 책에서 읽었다면 지금은 아기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정말 새로운 차원의 사랑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부모님이나 남편에 대한 사랑과 다르다. 연애 시절의 낭만적이고 두근두근하는 사랑과도 다르다. 아기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매우 자연스럽고 그저 따스하고, 그리고 헌신적이다.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것




어젯밤에는 직수한 지 여섯 시간 정도가 지나 눈이 떠졌다. 아기는 아직 자고 있었고 모든 것이 고요했다. 왠지 아기가 더 오래 잘 것만 같아 더 늦기 전에 어둠 속에서 오래간만에 유축을 했다. 그런데 유축한 지 15분 만에 아기가 깼다. 아이코,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일단 젖을 조금 빨려보고, 유축으로 많이 빠져나갔을 젖 양이 부족할 것 같아 유축해 놓은 것을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기는 젖병을 거부했다. 혀로 밀어내고 손으로 밀어냈다. 평소에는 새벽 수유를 하고 나면 아기가 스르르 잠이 들어 바로 눕힐 수 있었는데, 어젯밤에는 젖병을 물리기 시작한 다음부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똥말똥하더니 침대에 눕히자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울다 지쳐 겨우 잠이 들었다. 아기와의 수유 합을 맞춘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바로 이런 것이다. 어젯밤, 우리는 합이 맞지 않았고, 아기는 일종의 결핍을 느꼈겠고, 그렇게 잠에 들기를 어려워했던 것이다.



아침에 아기가 보채듯 잠에서 깼다. 겨우 잠든 지 한 시간 반 만에 깬 것이다. 아침 의식을 한 뒤, 아까 거부했던 유축해 놓은 젖병을 중탕해서 물렸더니 말간 얼굴로 꿀꺽꿀꺽 잘 먹는다. 그런 다음 젖을 물렸다(전략적인 순서 선택이었음). 간밤에 결핍을 느꼈고, 잠이 모자랐던 아기는 이제 쉽게 잠에 들었다. 아기를 먹이는 행위가 단지 영양분을 섭취하게 하는 행위만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남편이 "집착"이라고 말할 만큼 모유수유를 고집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아기 시절에 분유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랐고, 잔병치레도 없었다. 분유냐 모유냐는 선택일 뿐이고, 우월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중요했던 게, 내가 기질적으로 관계지향적이고 긴밀한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계 욕구가 누구보다 강한 기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30대 중반까지 내게 "친밀감"이라는 것은 경험되지 못했던 사전 속의 낱말이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편안하고 친숙한 친밀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추구하지만 그것이 충족되기 힘든 환경. 어느 정도냐면, 내가 아기를 낳고 나서 90일 동안 아빠는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도 방문하지 않았고, 괜찮냐, 내가 한번 갈까 하고 묻는 일도 없었다. 90일이 넘어서야 전화가 한번 와서는, 1월 중에 한번 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없으면 이모가 역할을 하는 거라고 말했던 이모 역시 아빠와 비슷했다. 100일 동안 전화한 통 없었다가 100일 즈음이 되어서야 "100일 잔치는 어떻게 할 거냐"라고 전화가 왔고, 지난 주말에 바람처럼 찾아와 쏜살같이 100일 잔치 세팅이며 부엌 정리를 후닥닥 하고는 또다시 바람처럼 돌아갔다.

그런 내게 아기 100일이 산욕기 초반의 50일 동안은 누가 카톡 한 번만 줘도 그렇게 고맙고 반가워서 위안이 되었고, 누군가는 아기 100일까지 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데 나는 50일 즈음 집에 가도 되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지, 와라, 와라, 와라."라고 말했다. 나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소통하기를, 그렇지만 오랜 세월 경험한 적이 없으니 누군가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낯설었다. 내 세계를 내어놓기 싫기도 했다. 그랬기에 친구들이 날 보고 "너는 너만의 세계가 있어서 그 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거 같은 느낌을 줘."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누구보다 욕망하지만 충족되지 못했던 관계 욕구는 어른이 되어서 더 본격적으로 발현되어 동료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랬고 지금의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제 그 거리를 조절하고 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 성인기 후반으로 들어서는 나의 삶에서 새로운 과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기는 성격이나 외모가 나를 닮았다. 눈물샘이 아직 생겨나기 전이라는 신생아 시절부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 조리원 간호사 선생님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었다. "신기하게 애기가 눈물을 흘리네?", "신기하다. 애긴데 눈물이 고여있어. 보통 울기는 해도 눈물은 안 흘리거든.", "애기가 감성적인가...?"

나의 아기는 모유수유의 비중을 늘리고 살과 살이 맞닿아 있게 옆에 끼고 지내기 시작한 즈음부터 강성울음이 사라졌고, 엄마를 보고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으며 순해졌다. 우연일까? 아니, 나는 모유수유가 그저 "맘마를 먹이는 것"에 지나지 않고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이라고 느낀다. 양쪽 15분씩 최소 30분, 하루 여섯 번에서 일곱 번 모유수유를 하는 시간은 200분이 넘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아기가 먹는 것을 보며 말도 걸고, 귀 마사지도 해주고, 귀지도 파주고, 엉덩이도 두드려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손 냄새도 맡고 손톱도 깎아준다. 아기 역시 마찬가지다. 젖을 빨며 아주 편안하게 팔을 내 가슴 위에 툭, 하니 던져놓는다.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주물주물 거리다가 사출이 있었는지 몸을 비틀고, 가끔 내 가슴을 펑펑 친다. 내가 매고 있는 머플러를 움켜쥐며 멱살을 잡기도 한다. 내 명치에 주먹을 갖다 댄다. 가끔 아기의 손이 내 가슴에 닿을 때 그 따스함에 전율이 느껴진다. 깜깜한 한밤 중에 그런 감각을 경험할 때면, 나는 느낀다. '아아, 이것이 바로 스킨십이구나'. 몸을 맞대고, 부비고, 서로 만지고 사랑하는 것은 애인과 하는 행위이다. 나의 애인은 남편이고, 아기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난 곳은 합창단이었다. 합창단 지휘자님이 출결을 강조하면서 매번 연습시간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마음은 필요 없어! 몸만 와!" 그보다는 더 고급진 표현이지만 합창단 음악감독님이 가끔 오셔서 하시는 말씀도 비슷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자주 만나십시오." 그분들은 알고 있었구나. 관계란, 애착이란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에서 싹트고 꽃 피운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관계에서 사랑도 꽃피고 예술도 무럭무럭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가 늘 공허했구나. 나의 원가족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 적었다.



100일 동안 지켜본 바로는 그날 많이 안아주지 않고 내 일로 소원했을 때 아기는 밤에 울음을 길게 울고 더 보챘다. 최근에는 아기가 배밀이를 시작해서 가만히 누워있지 못하기에, 몸으로 놀아주는 몸놀이를 시작했다. 엄마가 누워 아기를 위에 올리고 비행기를 태워주거나 엄마 배 위에 앉히고 엄마 허벅지로 소파를 만들어주고 그 위에서 놀게 했다. 저녁의 두어 시간 정도 그렇게 해주었더니 아기는 이제 눕히면 스르르 잠드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관계를 배운다. 관계를 만든다는 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몸을 부대끼고 살을 맞대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더 키워나간다는 것임을 아기를 통해 배운다. "나와 아기와 흰 눈"처럼 고즈넉하고 낭만적인 광경 안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이상적인 관계란, 그 이전에 살을 맞대고 부대끼는 근원적인 신뢰 형성의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 함께 있음의 즐거움이 없는 각자 할 일은 나와 나의 원가족처럼 외롭고 소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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