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사랑하기

갓난아기 키우기 +D 100

by 마음의 안쪽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다. 아침, 막 잠에서 깬 아기 얼굴을 보니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 감정은 무엇일까? 고마움, 대견함, 벅차오름. 아기는 말간 얼굴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준다.



100일의 기적은 찾아오려다 망설이기도 하는 게 맞는 것이, 어젯밤 아기는 마지막 수유 이후 내리 6시간을 잤지만(나도 덩달아 6시간을 잤다) 그러고 나서는 3시간 만에 깨서 두 번째 새벽 수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기가 6시간을 내린 잔 것은 믿기지가 않는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습관을 새로 형성하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내 몸과 마음이 아기의 생체리듬과 그걸 케어하는 데 완전히 맞춰져 버린 것은. 이전에 밤 잠을 잘 잤던 일이 생각이 나지 않고, 다시 내가 6시간을 내리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 되어버리다니. 신기하다, 묘하다. 아이를 낳기 전과 낳고 난 후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듯이, 내 상활도 정말.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패턴이 되어버린 것이다.



10대 때부터 밤에 늦게 자는 습관을 가졌었다. 고등학교 때야 말해 뭐 할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충분한 수면이란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같은 것이 아닐까? 일부 대학을 가지 않을 결심을 했거나 직업 전선에 미리 뛰어든 사람들의 경우엔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OECD 국가 중 한국이 평균 수면 시간 최하위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에, 미술학원에(나는 미술 전공이다), 학원 끝나면 다시 수능 공부하러 독서실 행으로, 새벽 두 시까지 깨어있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잠을 줄이면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0교시--(0교시라는 말은 누가 만들어 낸 거냐! 1교시를 일곱 시에 시작할 수는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0이라는 숫자를 붙여 아이들을 더 일찍 학교로 오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부족한 잠을 수업 시간에 다 잤던 것 같다. 친구들도 대부분이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을 거꾸로 사는 정말 미친 짓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치열한 삶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획득한 대학합격 통지서라는 목걸이는 사회에 나와서까지 일종의 간판 역할을 해주었으니... 그렇게 보낸 3년 간이란 영광의 상처인 듯하다.



대학교 때,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동안 그곳 사람들의 생활패턴에 의아함을 가진 적이 있었다. 보통은 아침을 안 먹거나 커피 한 잔에 크로와상 하나. 점심은 직장에서 먹거나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 그렇게 조금 먹고도 낮 시간에 활동을 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렇지만 저녁만큼은 직접 요리해서 만찬을 즐기는 것. 그리고 그렇게 먹고 나서 일찍 잠든다는 것. 그들의 냉장고에는 음식이 많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 저장 음식 천국인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정말 냉장고가 거의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들의 냉장고는 살림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참고로 나의 시어머니의 경우에는 음식에 의미를 두고 계신 데다 저장 음식이 엄청 많아서 냉장고 두 대에 김치 냉장고도 두대를 집에 두고 계시다).



특히나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이 거의 자지 않고 깨어있는 광경이 너무나 신기했었다. 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고 있지 않았다. 그냥 눈을 뜨고 있거나, 일부 포켓북이라 불리는 작고 얇은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아왔던 광경은,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것에 동참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버스에서는 그 흔들리는 리듬에 맞춰 푹 자고, 지하철에서는 그 쉬쉬-덜컹덜컹-웅웅 하는 백색소음에 맞춰 잠드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하철이 너무나 고요하고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어 거대한 수면실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하는 다소 엉뚱한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깨닫기를, 한국인들은 잠이 너무도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밤 잠을 7~8시간 잘 잔다면 대중교통에서 우리도 깨어, 책(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을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소매치기도 한몫할 것이다. 프랑스며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경험상 눈을 또렷이 뜨고 있어도 지갑을 훔쳐가는데, 만약 졸고 있다면 그건 스스로 너무도 쉬운 먹잇감이 되어 줄게요~ 하고 광고하는 샘이니 말이다.





체질과 생활양식이 바뀌면, 내 삶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고,
그건 그냥 삶 자체가 바뀐다는 뜻이다




나는 결혼을 10년 전에 해서 아이 없이 남편과 살았고, 늘 별다를 것 없는 비슷한 일과에 늘 비슷한 식단, 변치 않는 취미와 활동들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바로 이맘때 임신이 되었다. 임신 중에 임신성당뇨의 위험이 있어서 식단 조절을 시작했었다. 그러면서 살이 쭉쭉 빠졌다. 당을 줄이면 살이 빠지다는 사실을 배웠다. 살이 빠지니 인상이 변했다. 체질도 점점 변해서 단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출산 후에는(그래봤자 100일 밖에 안되었지만) 아기의 생활 패턴에 맞춰 자고 깨다 보니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론 밤잠이라는 구분이 의미 없이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 곧 깼지만 아기에게도 점점 밤잠과 낮잠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고, 아기의 수면시간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나와 남편 역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유수유 때문에 물을 엄청나게 마셔대니 화장실을 잘 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변비는 없었지만,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면 변기에 앉아 스마트 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30분 정도는 소요하곤 했었다. 지금은 변의가 느껴지면 앉자마자 변을 본다. 그렇게 줄어든 시간들이 시간의 서랍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그러한 자투리 시간에 나는 웹툰도 그리고 이렇게 글도 쓴다. 첫 번째 새벽수유를 마치고 나면 잠이 잘 오지 않는데, 어제도 선 잠에 들었다 깼다 하며 괴로워하다가, 에라 그냥 일어나서 요가를 했다. 임신 전에도 꾸준히 해온 요가는 그냥 매트만 펴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완전한 운동이다. 운동을 넘어서서 요가는 삶의 철학, 삶의 생활양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속을 살아가는 딩크족이었던 나에게 새벽 요가란 큰 의지를 발휘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스리슬쩍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깨면 이미 깔려있는 매트에 올라가 몸을 풀고, 그렇게 흐름을 타고 요가를 했다.



그렇게 삶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패턴 역시 또 언제 바뀔지 모른다. 다만 이토록 건강하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임신과 출산을 통해 배웠고 임신 출산은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사건임을 다시 한번 통감 중이다. 삶의 패턴을 정말 나에게 맞는 방식,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면 변화시킬 기회일지도 모른다.



입히고, 먹이고, 잘 재우기 - 의식주




아기를 보며 나는 다시금 인생의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먹고, 입고, 잘 자는 것. 아기의 의무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것이다. 엄마의 의무는 아기를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입히는 것이다. 출산 초기에 조리원에서 생활할 때도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다가 모자동실을 하러 올 시간이 오면 나는 아기가 누울 쿠션을 한번 정비하고(머리 쪽에 댈 수건 다시 깔기, 쓰러지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수건소세지 잘 놓아두기, 부드러운지 체크) 아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 퇴소 후 집으로 돌아와 아기 옆에서 잠을 잘 때, 아기가 뒤척이거나 신음 소리를 내면(그 신음소리 또한 얼마나 귀엽게!) 나는 선잠을 자다 깨어 벌떡 일어나, 아기의 잠자리를 살피곤 했다. 뭐가 불편한 지, 어디가 힘든 지. 아기가 거실에서 놀고 있다가 슬슬 졸린 기색이 보이면 아기 침대에 가서 온습도는 적당한 지, 이부자리는 편평한 지 미리 살펴 놓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나를 보면서 나는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지방에 살고 있기 때문에 5년 전, 대학원 공부를 하러 일주일에 2,3일씩 서울에서 머물러야 할 때에는 시댁에서 잠을 잤다. 밤늦은 귀가에 소리 죽여 조심조심 집에 들어가면, 현관 불이 켜져 있고 방에는 어머니가 미리 데워놓은 전기장판이 켜져 있었다. 겨울에는 두툼한 이불을 깔아놓으셨고, 여름에는 얇은 이불을 가져다주셨다. 그렇게 미리 잠자리를 살펴 주신 어머님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지금 아기의 잠자리를 살피고 있다. 아아, 그것이 어머니들의 마음이구나. 이부자리를 살피는 것. 편안하고 아늑하고 따뜻하게 자식들이 자기를 바라는 마음.



"먹이기"는 또 어떠한가. 친정 엄마는 원칙적인 스타일이라, 5대 영양소 골고루 먹이기 위해 계산을 하고(그래서 우리 집은 두부와 계란을 매일 먹었다), 눈에 좋다는 결명자 차를 늘 끓여놓고, 비타민 섭취를 위해 과일도 늘 구매해 놓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자취를 했을 때는 그 작디작은 냉장고에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셔서는 넣어놓고 가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어떻게 자식을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겨울, 엄마가 외출했단 들어온 나를 챙기며 식탁 위의 귤을 까주었던 적이 있다. 귤껍질을 벗겨서는 알맹이만 입에 넣어 주었다. 나는 받아먹기는 했지만 그때에도 마음속으로 '아니, 왜 이렇게까지?'라고 여기며 '아니 왜 껍질을 까줘?'라고 물었다. 엄마는 "너 편하라고."라고 대답하셨다. 엄마는 자식이 귤껍질을 까는 수고조차 없이 맛있게 귤을, 비타민 C를 섭취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아아.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었구나. 자식이 맛있는 것을 수고롭지 않게 잘 먹기를 바라는 마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은 우리 집 먹거리라면 시어머니가 많은 부분을 해주고 계시다. 내가 산모라 음식 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전라도 출신의 장녀인 어머니의 인생 자체가 먹을 것을 마련하고 동생들과 자식들을 먹이는 것에 있어 전문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혼자 하기 힘든 김치류와 젓갈, 손이 많이 가는 메뉴-닭볶음탕, 갈비탕, 사골국, 무생채, 나물무침, 소고기 장조림, 미역줄기 볶음, 간장게장, 양념게장... 등-은 만드셔서는 택배로 보내신다.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 볶음과 남편이 좋아하는 무생채는 늘 빠지지 않는다. 양도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이제 일흔이 다 되신 나이에도 자식들을 먹이는 데 생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입히는 것은 어떤가?, 시어머니는 내가 시댁에서 지낼 때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해 보인다며 원피스 형태로 된 꽃무늬 잠옷을 사주셨다. 겨울에는 철쭉 색깔의 알록달록한, 내가 골랐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스타일의 원피스 잠옷을 사다 주셨다. 나는 옷 욕심이 없어서 그냥 막 입고 다니는 스타일인데, 어느 겨울날에는 어머니가 보시기에 얇은 옷을 겹쳐 입은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어느 날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다소 올드한 이미지의 브랜드에서 오리털 파카를 사다 주셨다. 어머니의 마음이 또 한 번 보였다. 며느리이긴 하지만 나를 가끔은 "아가"라고 부르셨는데, 그런 아가가 춥지 않게, 편안하게 입는 것 말이다.

친정 엄마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내 입을 것에 신경을 썼다. 엄마는 처녀 시절에 멋쟁이였는데, 지나간 사진을 보면 엄마가 얼마나 옷을 잘 입었는지가 보인다. 몸에 달라붙는 카키색 셔츠에 미니 스커트, 롱부츠... 바바리코트에 스카프, 스타킹과 굽 높은 구두.. 그런 엄마는 내가 거적때기 같은 것을 입고 다닌다며 탐탁지 않아 했다. 나는 여성적인 스타일의 옷을 거의 입지 않고,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스타일을 추구한다. 치마도 거의 안 입고, 가방은 늘 백팩에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 내가 선택한 티셔츠는 대개 무늬나 로고가 없고, 색은 원색을 좋아한다. 엄마는 그런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닌 옷들을 사다 주곤 했다.

한 번은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 착장을 바꿔 엄마 방식으로 입어보라고 설득과 종용 중간쯤을 했다. 미니 스커트에 프릴 달린 블라우스, 물건이 몇 개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핸드백에 굽 높은 구두. 어색하게 집을 나서는 나를 보며 엄마는 너무 좋아했다. 내가 내 의상을 고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그전까지는 내 의상의 선택은 엄마가 했는데, 어린 시절 찍힌 사진을 보면 나는 정말 예쁜 옷들을 입고 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그래서 가족 여행이나 서로에게 생일 선물을 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 의상에 대해서만은 돈을 잘 썼다. 가끔 구두를 사 오기도 했고, 철 따라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기도 했다. 엄마 역시, 겨울철에 춥게 입고 다니는 나를 보더니 백화점에 데리고 가 오리털 파카를 사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 말씀하셨다. "부티 나게 입어".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나 보다. 내가 이쁘게 하고 다니는 것. 예쁜 옷을 입고 예쁜 모습을 하는 것. 그렇지만 겨울에는 춥지 않은 것. 풍요롭고 넉넉해 보이는 것.


아기를 낳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난 것은 역시 어머니, 어머니들이다. 친정어머니는 8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산욕기 초반에는 정말 생각이 많이 났고, 그리웠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시어머니도 멀리 계시다 보니 자주 볼 수 없어서 그리웠다. 아기를 챙기다 보면 두 어머니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모를 마음이다.



아기가 잘 먹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더 좋다고 하는 것을 먹이고 싶다. 모유수유를 고집했던 마음 안에는 그런 것이 들어있을 것이다. 모유가 좋다는 말과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이 힘을 불어넣었다. 모유 양이 적다고 느꼈기에 분유 보충을 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많은 분유 브랜드가 있는지는 몰랐다. 그중에서도 소화가 잘 되고 성분이 좋은 것을 골라보고,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 추천도 받아보았다. 분유 브랜드에 체험 신청을 해서 작은 통을 서비스로 받아 아기와 잘 맞는지도 시험해 보았다. 꼼꼼히 따져보고 비교해서 쇼핑하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기가 먹을 것은 조금 다르다. 그렇게 아기가 잘 먹고 잘 소화시켜서 몸무게가 무럭무럭 늘기를 바란다.

아기가 입은 옷이 편안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지금 아기가 입는 옷은 거의 물려받은 것인데, 아기가 조금씩 크기 시작하면서 입던 옷이 작아져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아가방에 가서 아기 옷을 골랐다. 처음으로 고르는 아기 옷. 내 아기에게 어울리는 노란색 옷으로, 입고 벗기 편한 우주복 스타일에 재질은 야들야들 너무 두껍지 않아서 답답하지 않은 옷을 골랐더니 역시 가격이 비쌌다. 그렇게 직접 골라 사온 옷을 처음 입혀보니 아기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화사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이고 이쁜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제는 다가오는 주말에 동네 친구들 여러 명이 방문해서 두 번째 백일잔치를 치러준다는데 그날 무엇을 입힐지 고민하다가 또 인터넷으로 아기 옷을 구입했다. 평소에 집에서 막 입는 옷이 아니라 하얗고 널찍한 카라가 달린, 프릴이 있는 샛노란 옷을 구입했다.

아기가 불편함 없이 잘 잤으면 좋겠고, 자신의 공간에서 마음껏 뛰놀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방 한 개를 완전히 비우고 아기방으로 꾸몄다. 안쪽 노란색 리넨 커튼과 바깥쪽 차르르 커튼으로 밖에서 오는 햇빛을 더 부드럽게 바꿔주었다. 이케아에 가서 원목으로 된 수납장을 사다 설치했다. LED 조명을 떼고 달 모양 조명으로 바꾸어 달아 주었다. 이제 아기는 저 방에서 자라날 것이고, 아기가 커감에 따라 방의 구조며 가구도 달라지겠지.


아기 100일날 입혔던 색동 한복






오늘도 아기를 재운다. 잠에 잘 들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라며 아기가 잠들고 난 뒤에는 큰 생활소음이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한다. 오늘도 아기를 먹인다. 모유수유와 비타민 D, 그리고 가끔 분유로 보충도 한다. 이제 머지않아 이유식을 시작하고 아기는 엄마 아빠와 같은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씹기 시작하겠지. 오늘도 아기를 씻기고, 갈아입힐 옷을 고른다. 방 온도를 얼추 생각하면서 너무 두껍거나 덥지 않은, 부드러운 소재로 된 편안한 옷을 찾아 갈아입힌다. 나도 그러한 사랑으로 자라났고, 이제는 그런 내가 아기를 낳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렇게 사랑한다.


아기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OO아, 100일 축하해. 그리고 축복해. 이제 막 백 날을 살아온 너에게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60년... 80년의 긴긴 세월이 기다리고 있어. 그 길 위에서 엄마 아빠가 너의 등대가 되어줄 수 있게 노력할게. 너의 기쁜 일은 함께 나누고, 때때로 힘든 일은 응원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엄마가 될게. 아주아주 행복한 아기가 되렴, 그래서 그 행복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아주아주 행복한 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아기는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이케아에서 사 온 쿠션을 발로 팡팡 차면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