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키우기 +D 113
100일을 기점으로 아기는 밤에 6~7시간을 자기 시작했다.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육아는 훨씬 쉬워지기 시작한다. 아아~! 얏호? 드디어 나의 육아는 조금 더 쉬워지기 시작하는 걸까! 그런데, 그런 달콤한(?) 시간은 단 며칠만 지속되었다... 내가 기나긴 동굴 생활 중에 모처럼 긴 외출을 했던 지난 일요일 바로 다음날부터, 그니까 월요일부터 아기는 잘 안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은 어느 한 가지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기는 잘 안 먹으니 졸려도 배가 고파 쉽게 잠들지 못해 떼를 썼고, 그렇게 간신히 잠에 들어도 금방 깨서 울게 되었으며, 잘 안 먹으니 잘 싸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엄마의 긴 외출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아기는 월령에 맞춰 그저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을 뿐인데, 왠지 내가 길게 외출을 해서 아기가 갑자기 변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기가 먹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면서, 혹은 신생아 때처럼 먹는 법을 모르거나 배가 아파서 거부한 것은 아니다. 아기는 젖을 빨면서 눈알을 아래로 위로 굴리며 창 밖으로 이 세상과 외부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예쁜 표정을 지으면서 먹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당연히 예전에는 아구아구 먹던 것이 깨작깨작으로 바뀌었다. 젖꼭지를 자꾸 놓아버리고, 창밖을 보다가 다시 엄마랑 눈 마주치면 싱긋 웃고, 이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젖꼭지를 무는 일이 반복됐다. 너무 놀랍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먹는 데에 집중하질 못하니 얼마나 잘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젖꼭지를 다시 물려주는 일도 몇 초마다 한 번씩이 되니 힘들어졌다.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로 젖꼭지를 퉤 뱉어내니 어이가 없고, 많이 못 먹어 배고플까 봐 분유를 타서 보충하려고 하면 역시 싱긋 웃으면서 젖병 젖꼭지를 입 안에서 굴린다. 왼쪽으로 굴리고 오른쪽으로 굴리고 혀로 메롱메롱 밀어내면서 날 보면서 웃는다. 하아...
아기는 정말로, 그때그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얼마나 계속 변하고 있냐면, 아침의 얼굴과 점심의 얼굴, 그리고 저녁 무렵의 얼굴이 다르다(우리 어른들도 그러한데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아기가 신생아 시절에 냈던 어떤 소리가 있었다. 신생아 시절에 짓던 어떤 표정이 있었다. 꼭 기억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기가 태어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조리원 내 방 역류방지쿠션 위에서 자고 있던 아기와 그 옆에서 쪽잠을 자고 있던 남편을 바라보며, 그 순간 안에 있는데도 곧 지나갈 그 순간이 너무나 그리워서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지금 아기는 더 이상 그 소리를 내지 않고, 그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 당시가 잘 생각이 안 나고 다만 내가 그 순간을 그리워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있다. 망각이란, 슬픈 정서까지도 잊게 만들지만 그걸 기억하는 남은 사람에게는 더 큰 슬픔이 남는다.
문득, 인간의 일생에서 초기의 3~5년과 후기의 3~5년은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립하지 못하므로 돌봄 자가 필요하고, 또렷하지 못한 상태로 무의식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또한 당사자는 그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이렇게 적고 있으니 왠지 슬프기도 하다. 특히 노인의 망각은 초겨울의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서글프다. 함께 공유했던 기억을 한 사람이 저버리는 느낌이기에, 더 이상 기억을 갖고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듯한 느낌이기에, 그 지난했던 세월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기의 망각은 초기의 부모 또는 양육자의 헌신과 무한한 애정을 아기가 기억하지 못한 채 점점 커간다는 면에서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그래서 아마도 아이가 의식이 또렷해지고 자아가 커지면서 부모를 원망하게 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기의 초기 망각기는 그 아기가 세상에 대한 믿음, 안정감, 평생을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는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나는 현재 개인적인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채 아기를 돌보고 있다. 육아는 나의 통제욕구를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므로 원래 통제욕구가 강했던 사람일수록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 나 역시 정리정돈과 내 스케줄에 대한 통제 욕구가 강한 편이었어서 그러한 점에서 육아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활동적인 스타일이고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집에서만 있는 이 113일이 참으로 갑갑하게 끝나지 않을 웅녀의 동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내가 원래 해 오던 스케줄 관리 능력이 지금도 발휘되어 내 모든 스케줄을 전적으로 아기에게 맞추되, 그 안에서 개인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으려 애쓰고 있다. 아기가 잠들면 나도 함께 잠들고, 아기보다 먼저 깨서 개인 시간을 조금을 사용하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성향이 활동적이므로 집안일도 신속하고 활기차게 해낼 수 있다. 내가 원래 지녔던 에너지를 집 안으로 돌려 아기와 함께 발현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육아는 '한없는 힘듦'에서 '새로운 생활패턴', '새로운 에너지'로 변모한다.
아기는 나의 모든 행동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스펀지처럼 세상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다. 나는 아기를 보며 말한다. 너는 지금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평생 살아갈 힘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 행복한 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아기는 행복하다.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고, 잘 자고 일어나면 왕마냥 행복하다. 나는 그런 아기를 보면서 예쁘다 하고, 예쁘다 하고, 예쁘다 하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요즘 아기는, 자고 일어나면 팔순 노인이 뭔가가 못마땅할 때 낼 법한 "에잉~"소리 비슷한 걸 낸다. 엄마 젖을 먹다가 멈추고 엄마를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옹알이 스킬이 늘어서 자음을 섞어 말하고, 아기 앞에서 엄마가 노래를 종종 불러줬더니 아기도 높은 소리로 노래를 하려는 듯한 옹알이를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적을 먹기 전에 엄마가 "아~" 하고 입 벌리라는 신호를 주면 아기도 "아~" 하고 소리를 내며 젖을 문다. 그렇게 젖을 빨다가 어느새 스리슬쩍 뱉어내고는, 엄마를 바라보며 애걸하는 눈빛으로 애교를 부린다(놀아달라는 듯). 그런 아기를 보며 엄마가 앞에 놓인 머그컵에 담긴 차를 아주 맛있게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자 다시 젖을 물고 약 3분 정도 열심히 먹어주기도 한다. 아직도 잠투정은 심하지만 어제는 아기 재우려는 도중 엄마가 자는 척을 했더니 아기도 그걸 빤~히 보고 있다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실제 잠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놀라운 광경이었다). 최근엔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가끔 꿈수(젖 먹으며 자는 것)를 할 때 좋은 꿈을 꾸는지 씨익~ 웃기도 한다.
이 모든 순간들이 가슴이 시리도록 소중하다. 이 순간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고, 영원해서도 안 되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갔으면 하는 것은 내 욕심일까? 많은 부모들이 조금만 늦게 커줬으면 좋겠다는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인간은 왜 망각을 할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하면 좋을 텐데..? 아니,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을 기억하면 살기가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 사람들이 했던 무심한 말들, 그렇게 받은 상처, 나를 보던 그 사람의 비호감의 표정, 내가 했던 수치스러운 행동, 실수... 이런 것들을 다 기억한다면 삶이 얼마나 복잡할까. 기억의 서랍 안에 정리하지 못한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는 삶이란 가뿐하지 않고 찌뿌둥할 것만 같다. 좋은 것만 기억한다면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내게 남아있는 과거의 기억들은 좋은 것들이 많다. 아아, 그러니까 정말 좋은 기억들은 추억이 되어 내 삶을 살찌우는구나. 안 좋은 기억들을 잊을 수 있고 좋은 기억은 몸에 새기는 능력은 참 복된 것이다.
문득, 최근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주말마다 보러 가는 한 친구가 떠오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를 하고 있을 테고 마음도 참 많이 힘들겠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을 혼자 느껴본다. 한 존재는 당신이 살아온 생을 점점 망각하면서 새로운 우주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친구)은 덧없고, 또한 서글프기도 할 것 같다. 또 한 존재는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우주에서 몇 십 년을 살아가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모든 활동을 기억할 필요 없이 1초 단위로 울고 웃으며 찰나를 살아가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나)은 한편으로는 덧없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내리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내 인생의 가장 극적인 터닝 포인트. 아기를 낳은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3개월 전이 머나먼 꿈속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 역시도 수없는 매 순간들을 망각하며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아아. 과거를 망각해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로구나. 망각이란 그런 힘을 가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