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키우기 +D 141
봄이 오고 있고, 아기가 컸다! 아기가 컸다는 건 아기가 새로운 발달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말한다.
이제 +D 141일인 아기는 잠잘 때 우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보다 잠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한 게, 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깨어있으려고 잠과 싸우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잠을 공포스럽게 여기지는 않는 모습니다. 아기가 엄마 젖을 가지고는 먹다-놀다-먹다-놀다 하고, 분유는 거부하던 시기가 2주 정도 지속되었다. 이 시기를 요즘 말로 먹태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폭풍 성장기가 찾아왔는지 젖을 7분 내에 힘차게 빨고는 갑자기 옹알이로 항의를 하다가 퉤 뱉어내고, 거기다 분유를 추가로 줘도 벌컥벌컥 잘 먹는다. 젖은 빠는 만큼 나오지만 요즘 아가는 더 빨리 많이 먹고 싶은 건지, 쫄쫄 나오는 후유를 답답해하는 것 같다. 아기는 요 며칠 사이에 옆얼굴이 달라졌을 정도로 훌쩍 컸다. 이제 더 이상 '아가'라고 부르지 않고 '아기'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는 모습이 되었다.
나흘 전에 친구 부부가 놀러 왔었다. 우리 아기는 그 집 아기인 18개월 오빠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다음날 수유를 하며 바라본 내 아기가 갑자기 커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가들을 함께 두면 질투를 해서 그 이후에 더 빨리 크려고 한다는 낭설 같은 소문이 귀에 맴돌았다. 그런가 하면, 7시간 간격까지 늘어났던 밤잠이 다시 세 시간 간격으로 줄어, 지난밤에는 두 번 수유를 했다(새벽수유 투 타임 부활ㅜㅠ). 요 이틀 동안은 아기가 새벽 대여섯 시인 애매한 시간에 깨고 나서는 통 자려고 하질 않는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어스름빛에서 놀아주고 기저귀 다시 확인하고 배고픈가 하여 분유도 더 줘보고 하다 보면 해가 중천에 떠 있고, 같이 누워 한참을 놀아주다가 재우고 나면 열 시 열한 시가 되니, 원래 매일 하던 아침 의식을 진행하기가 매우 애매해졌다. 이렇게 패턴이 조금 안정적이라고 느낄 때면, 바로 변화가 찾아온다. 아아. 아기는 매 순간 변하고 있구나. 그리고 아기에게 모든 걸 맞춘 나의 생활은 또 새로운 틈새를 찾아내 또 야무지게 나의 자아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하겠구나. 나의 자아를 위한 일... 나의 자아를 위한 일이란 무얼까? 분명 아기 키우는 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긴 하지만, 아기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의무들을 행하고 있는 나의 일부일 뿐이다.
아기가 자고 있는 동안에 얼른 나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대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서둘러 돌았다. 쨍한 햇살을 듬뿍 맞고 싶었다.
"태양아, 내 몸에서 멜라토닌을 생성해 줘!"
매일매일 집에만 있는 삶. 아기가 100일이 지난 후부터는 아기 배냇머리와 함께 무섭게 빠지는 내 머리카락 덕에 볼륨도 없어지고 얼굴도 함께 퍼석해져 못생겨져 버린 듯한 맨얼굴을, 봄을 부르는 짱짱한 햇살 아래 부끄럼 없이 내놓아 보았다. 봄바람이 몹시 매서워서, 겨울과는 분명 다른 느낌인데도 무척 추웠다. 금방 온몸이 쌀쌀하게 식더니 곧 차가워지길래, 종이박스 한 개를 품에 안고 햇살 아래에서 무작정 뛰었다. 약 10분 여간의 숨 가쁜 뜀박질. 평소에도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매서운 공기, 그렇지만 시리도록 밝은 하늘 아래의 뜀박질은 유독 달콤했다.
매일 아가와 함께하는 생활은 달콤한 감옥 같은 느낌이다. 아기의 스케줄에 모든 것을 맞춰 그 틈새에서 나는 많은 일을 해낸다. 이것이 역전되는 때가 언제 오려나! 나의 스케줄에 아가를 맞출 수 있는 날이 올까? 훗날, 아기와(더 이상 아기가 아닐..) 나의 각자의 스케줄을 서로에게 맞출 날이 오려나?! 그날은 언제일까? 아기가 깨기 전에 글을 쓰고 싶었다. 아침을 못 먹었지만 아기가 깨면 글을 쓰지 못하니까. 아기가 깨기 전에 글을 쓰자! 하면서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아침에 인터넷에서 봤던 기사 하나와 수많은 댓글이 상념으로 이어진다.
오늘 아침 아기를 재우기 전, 잠시 핸드폰을 확인했다. 왜 인터넷을 켰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무의식 중에 켰던 것 같다. 꽤 관심을 끄는 제목의 기사 하나에 눈이 갔다, 서양 어디 어디의 노벨상 수상자(여성)가 "남편이 가사에 쓰는 시간이 적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매우 단편적인 기사였지만, 그 기사에 무수히 달린 댓글들이 본 기사보다 훨씬 많은 논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과 여로 분리되어 서로를 공격하는 댓글들, 그리고 다른 댓글과 기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댓글들. 분열과 공격, 방어. 그리고 또한 좌절과 잘난 척 같은 것도 느껴졌다. 나 역시 그 기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좌절되었던 나의 바람과 나의 생각에 대한 잘난 척도 들어있겠지.
나 역시 즉각적으로는 그 기사에 얼핏 "옳소!" 외치고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나도 평일 중에는 나 혼자 아기를 돌보는 일상을 살고 있고, 분명 힘든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 숨을 돌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면 조금 달리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아이 낳은 준비를 하면서 남편이 먼저 육아휴직에 대한 논의를 꺼내지 않았다는 점은 섭섭하긴 하지만, 애초에 나는 스스로 나 혼자만 육아휴직을 하고 아기와 온전히 일 년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고 보니 점점 내 삶은 "전업주부"의 삶이 되어갔다. 어느덧 깨달아보니 세세한 집안일은 내가 거의 다 하고 있고,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몸만 씻고 출근하는 입장이 되어있다. 주말에 남편이 아기를 돌보는 사이 내가 외출을 하거나 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을 때면 나는 아기를 두고 나온 엄마가 되고, 반면에 남편은 자상하다, 대단하다는 칭찬을 내가 대신 듣게 되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독박육아를 하는 불쌍한 아내이고, 남편은 집안일을 잘하지 않는 이기적인 남편이고 우리 부부는 꼭 그 기사에 해당하는 불행한 부부인 것인가?
아니, 나는 행복하다.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그동안의 나를 탈피하는 엄청난 경험이었고 아기는 그저 바라만 봐도 너무나 예쁘다. 분명 지금의 이 갑갑함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행복이다. 또, 남편이 아침에 점점 늦게 일어나 몸만 씻고 출근하게 된 것은 우리 아기의 귀가 밝아 아침에 소음이 발생하는 집안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것은 남편의 회사가 비교적 전근대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면 욕을 먹고 상사에게 찍히는 환경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 중에서 당연스레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된 이유를 저 기사처럼 연구논문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주는 애착과 친밀감이 아빠가 주는 사회적 성장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임을 우리 부부 둘 다 직관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직장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곳이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칼같이 지키고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는 꽤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육아휴직을 통째로 쓰는 데 있어 1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하나의 문장으로 된 명제 하나는 분명 진실일지라도, 그 안에 숨은 이런 사정들과 이야기들을 담지는 못한다. 아무리 노벨상 수상자가 연구하고 검증한 학술논문일지라도 그것을 심하게 간추려 자극적인 제목만 뽑아놓은 기사에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가 없다.
우리들은 왜 그 기사로 인해 서로를 더더욱 공격하며 더 불행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남녀로 갈려 서로를 공격하는 듯한 댓글들이 내게는 "내가 더 힘들어", "아니, 내가 더 힘들어"로 보였다. 아아. 남자여서 힘들구나. 아아, 여자여서 힘들구나. 우리들은 남자도 힘들고 여자도 힘들구나.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같이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남과 나의 급여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댓글 중에 상당수는 남자가 버는 돈이 여자보다 많으니 여자가 살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이다.
나와 남편의 급여는 100만 원 여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것은 회사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남편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기업, 나의 회사는 정부 지원을 받아 공익적 일을 하는 사회적 기업), 연차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남편은 지금 회사 경력 10년, 나는 3년), 옛날 옛적에 만들어졌던 가부장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몇 군데의 출판사를 거친 후 취직하게 된 디자인 회사를 다닐 무렵, 노동법 같은 것은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고 나 역시 무지했다. 출근하기로 한 첫날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실장이 정규직으로 하면 세금이 많이 나간다며 계약직으로 사인하라고 했다. 나 역시 정규직이 보험료가 이렇게 많이 나간다고? 하며 옆에 미리 준비된 비정규직 서류에 사인을 했다(정말 무지했지...). 그렇게 들어간 비정규직 디자이너는 야근 수당도 없이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일을 했었다. 심지어 퇴근(?) 후 요가를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자연스럽게 회사로 다시 돌아와 밤 12시까지 일할 정도였으니 그냥 회사에서 살면서 집으로 출퇴근했다고 보면 더 알맞겠다.ㅋㅋ 각 시즌별 마감일 무렵에는 밤샘 작업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팀은 세계문화대전집이라는 1년 반 짜리의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는데, 실장 한 명, 경력 디자이너 두 명과 초보 디자이너 한 명이 골고루 권 수를 나누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초보 디자이너가 너무 일을 못해서, 나와 동료 디자이너가 겨우겨우 각자 맡은 권수를 쳐내고 있을 때에 이 친구는 어기적어기적거리면서 우리에게 일처리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물어보거나 설명을 하다 못해 우리가 이 친구 일까지 대신해주어야 하는 일들이 자꾸만 발생했다(디자인은 몸으로 하는 일이다. 말로 설명해 낼 수 없다). 마감은 한 달 한 달 다가오고 있었기에, 실장은 급히 경력직 프리랜서를 임시직으로 채용했다. 그 사람은 기혼 남성이었고, 임무는 그 "초보 디자이너의 일을 나누어한다"였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거의 비슷하게 새벽 야근을 하는 환경에다 실장, 나, 동료는 각각 15권씩 맡은 각권의 기획과 디자인을 쳐내는 상황에서 그 초보 디자이너와 임시직 남성은 15권을 반으로 나누어 7.5권씩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임시직 남성의 급여가 나와 동료의 급여보다 높았다는 사실이다. 경력이 있으니 당연하다고? 그렇지만, 그 남성의 디자인은 경력에 비해 굉장히 좋지 못해서, 일단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았고 실수가 잦았으며 마감이 거칠어서 그의 뒤처리를 또다시 나와 동료가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 급여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단지 경력에서 오는 것이라면 경력자인 나와 초보 디자이너의 급여가 달랐어야 했지만, 여성 셋의 급여는 모두 같았다. 만약 학벌에서 오는 것이라면 오히려 나와 동료가 그 남자 디자이너보다 더 높았어야 한다. 나는 그 어린 시절(18년 전)에도 그 차이는 "가부장 사회"에서 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급여 차이는 분명 학력이나 능력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문화에서 온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녀임금격차를 두고 남성이 유능하기 때문에 임금이 높은 것이라는 착각을 범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유능한 사람이 급여가 높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남자여서 유능한 것은 아닌 것이다. 역시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다. 우리 사회는 급변하는 역동적인 사회이지만 아직도 "옛" 문화가 건재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새로운 기술변화와 생각의 변화 아래에는, 우리 부모세대와 조부모세대가 물려준 생활습관과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개인별로 원하는 삶이 다르고, 기질과 성향이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게 되면 한국인이라는 인간군상은 모두가 불행한 집단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성실했고, 인상이 좋고 미인이었다. 책임감과 성실함이 뛰어나 맡은 것에 대해서는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스타일이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를 하는 전업주부를 꿈꿨다. 아버지가 제법 탄탄한 회사에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었던 시절에는 엄마는 나와 오빠를 돌보며 가사 일을 하는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가 있었다. 비록 아버지가 가정적인 분이 아니어서 함께 육아를 하거나 온 식구가 같이 여가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 시절을 분명 "호시절"이라 여기셨다. 하지만 엄마는 기질적으로 조금 눈치가 없고 섬세하지 못하셔서, 엄마가 한 살림은 약간 거친 면이 있었고 엄마의 요리는 맛보다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어떤가? 아버지 역시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보기엔 부족함이 없는 스펙이었지만 아버지는 기업 문화와 맞지 않는 성격이었다. 남 밑에서 굽히는 것을 못했고, 정치적이지 못했으며, 예민하고 섬세했다. 때문에 아마도 가부장적 위계를 가진 기업 내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아버지는 타고난 센스가 있어서 특별한 날 요리를 하면 맛있었다. 아마 살림을 했어도 잘하셨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아버지가 회사를 뛰쳐나와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부터 우리 집은 기울었다. 대쪽 같고 융통성 없는 아버지가 정치적 인간관계와 수완이 많은 것을 결정하는 개인사업을 잘 해낼 리가 없었고, 전업주부의 삶에도 만족하던 엄마는 13년의 경력단절 후 재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13년 사이에 세상을 많이 변해있었다. 엄마의 학벌과 능력은 빛을 잃어 있었다. 낮추고 낮춰 힘든 일을 다시 해야 했던 엄마와 그 이후로 집에서 담배와 함께 티브이만 바라보며 재기를 꿈꿨던 아빠. 엄마는 일하기 싫었지만 바깥에서 일을 잘 해냈고, 아빠는 분명 가사를 했다면 잘 해냈을 거였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할 수 "없었다".
다시 그 기사로 돌아와서 나는 그 댓글들을 읽으며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나고 슬프기도 한 감정을 경험했다. 남과 여를 떠나 그 기사를 읽거나 댓글을 달았던 "우리 모두"는 어떠한 "사회문화" 안에서 욕구가 어느 정도 좌절된 삶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다"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는 이제 지나갔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삶이 주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불행한 듯 보이는 결혼생활을 목격하며 자랐고, 이십 대 때는 적극적이지 않은 비혼주의자였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자라났고,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감추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심리상담을 공부한 지 8년이 흘러 상담자로 일한 지도 3년 차가 되었다. 사람 마음에 대한 공부와 상담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 후에야, 나는 피해자로만 보였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고, 가해자로만 보였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연민으로 바꿀 수 있었다.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 맥락 속에서 두 분의 선택들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각자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달랐고,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해 본다. 엄마가 당당하게 당신의 능력을 발휘해 계속 직업을 이어나갔다면? 아빠가 타고난 센스로 집에서 가사 일을 하며 엄마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했다면? 아마도 우리 집은 그토록 강력한 분란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참 활동적인 사람이다.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일하는 것도 즐긴다. 집에만 있는 날에는 좀이 쑤셔서 근처라도 돌고 들어와야 성이 풀린다. 성취 욕구가 높고 센스가 좋아서 어딜 가나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인간관계에서 경계를 잘 설정하지 못하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윗사람한테 복종하지도 못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러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여러 군데 면접을 본 뒤 큰 출판사와 작은 출판사 중 작은 출판사를 선택했다. 그저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취업을 할 때에만 해도 작은 회사는 "작고 단단한" 회사가 아니라 "체계가 없기 때문에 아직 크지 못한 회사"였음을 실제로 출근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어쨌든, 지금은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고 상담은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1:1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의 기질과 상당히 잘 맞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 가정주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면? 실제로 아기를 낳고 50일 동안은 고통스러웠다. 아기에게 모든 걸 맞춰야 하는 면보다도, 하루종일 밖에 나가질 못하고 성인 어른과 함께 대화를 나누지 못하며 맡은 일을 해내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면이 가장 힘들었다. 하루종일 아기와 말없이 있으면서 혼자 점심을 먹는 것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출근을 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남편이 얄밉기까지 했다.
남편은 어떨까? 남편은 쉽게 피로해지는 스타일이다. 회사에서는 맡은 바 일을 잘 하지만 체력이 약해서 집에 오면 거의 누워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집안일은 나처럼 꼼꼼하고 세심하게 하지는 않지만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요리를 자연스럽게 잘하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의 집안일은 척척 해낸다(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집안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또래나 회사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남녀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고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런 남편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대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회사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그다지 답답해하지 않고 핸드폰만 있어도 유흥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상상해 본다. 정말로 단지 우리의 기질만 놓고 본다면, 나는 밖에 나가 활동적인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벌고 남편은 가정주부로 머무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역시 전 세대가 낳은 산물이기도 해서, 나는 "엄마"다운 엄마로서 아기를 돌보지 않게 되거나 내 일에 집중한다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두렵고, 남편은 "가장"으로서 집안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두 어깨에 책임감이 올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남성임과 여성임을 떠나, 우리의 이런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질에 대해 잘 알고 그와 잘 맞는 생활양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시대와 문화 속에 흠뻑 들어있는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요즘 뒤집기를 행하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 곧 몸을 쨘하고 뒤집고, 바닥을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는 기적을 보여주겠지. 나는 고통스러웠던 50일간의 경험 끝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들을 찾았다. 아기를 지켜보고 사랑하고 아기의 욕구에 응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일을 하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더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기를 지켜보고 사랑하고 돌보는 일을 "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기 시작했고, 아기가 자는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그걸 시대가 주는 선물이기도 한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나누며 반응을 즐긴다. 아기를 두고 혼자 나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아기를 안고 온라인 책모임과 스터디 모임을 한다(아기가 자고 있으면 더욱 땡큐다). 실제로 이 방법들을 행하기 시작한 뒤 나는 우울감이 없어졌고, 아기를 돌보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하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지금 하는 일들로 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지만 육아휴직 중이라 육아휴직 급여가 다달이 들어온다. 나는 직장 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급여를 받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글과 만화로 작은 돈이라도 벌게 된다면 나는 정말 정말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요즘 남편이 육아휴직을 고민하고 있다. 아기를 평일에 혼자 돌보는 나를 위한 고민이다. 그런데, 남편의 회사 생활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댜. 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는 임무를 스스로 안고 있다. 다소 전근대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매일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고 격주 토요일도 출근을 한다. 여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건 자연스럽지만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건 눈치를 주는 회사이고,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지라도 남성이 육아휴직을 썼을 때 짊어지게 될 "괘씸죄"가 있어 복직 후에 아마도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의 육아휴직에 대한 고민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편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십 년을 어떤 생활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이가 있어서, 이직을 했을 경우 급여가 지금보다 낮아질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상사를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고, 맡은 할 일을 다 하는데도 더 많은 일에 대한 압박을 받고, 휴가 등의 엄연한 권리를 마치 상사가 허락해 주는 양 여긴다면...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 생활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멀 것이고 남편의 삶은 분명 덜 행복할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큼의 돈이 필요한 지 생각해 본다. 하루에 얼마큼만 일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다. 어떤 형태로 일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런 환경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이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역시 꽤 젊을 적에 이런저런 연유로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야 했던 만화 창작과 글쓰기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었다. 얼핏 보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행위들을 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은, 아마도 그걸 통해 돈을 벌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기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잃었던 나의 그 부분을 일부나마 되찾아가고 있다.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을 다른 직업으로 택한 후에는 창작이라는 행위는 나에게 아무 의무감과 열등감을 남기지 않는 순수한 취미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아기와 함께, 남편과 함께, 나 스스로가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속한 환경과 처지에서 내가 최대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습득해야 할 아주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조급하지 않게, 남편과도. 남편이 찾아갈 수 있는 행복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