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Oct 12. 2019

영화 <판소리 복서>, 우리의 시대는 저물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작은 불꽃이 살아있다면.




0. 우리의 시대는 저물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작은 불꽃이 살아있다면.




0. "그 모습이 니 현실이고, 이 체육관이 내 현실이야. 우리 시대는 끝났어.". 참담함이 비수로 꽂히는 관장의 말.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그런 현실이, 그런 시대가 있을 혹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 아프지만 결연하게 느껴지는 병구의 대꾸,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도 끝난 건 아니잖아요.".


그리하여 그는 다시 장단에 주먹을 맡긴다. 가락에 실린 펀치가 링 위의 밀도 높은 공기를 가른다. 지나간 시간과 지나간 사람과 지나간 기회를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미 시대는 지나갔을지라도 여전히 '나'는 이 자리에 남아있으므로. 휘몰아치는 장단에 맞춰 그 어느 존재보다도 처연한 주먹이 링 위를 가로지른다.


현실의 링은 다시 병구에게 어퍼컷을 안기지만, 그는 마침내 간절함으로 시대의 끄트머리를 붙들고야 말았다는 벅찬 마음으로 넉다운마저 순응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물먹은 눈동자에 지난 날의 아스라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컷에서 기어이 콧날이 시큰해져 버렸다. 나만의 시대를 기어이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란, 그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하면서.




0. 엄태구. 셰퍼드의 얼굴에 진돗개의 눈동자를 가진 배우. 몇 년 전, 시쳇말로 '병맛' 가득했던 서사 속에서 뜻밖의 진중함을 연기해 낸 <잉투기>부터 주목했던 이 배우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다. 마치 <판소리 복서>의 병구처럼. 그를 좋은 배우로, 좋은 작품으로 오래 만날 수 있기를 믿음으로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칠드런 액트>, 이제 그는 자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