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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Oct 22. 2019

영화 <버티고>, 견딜 수 없음을 견딜 수 없어지다

서영의 그 깊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




0. 견딜 수 없음을 견딜 수 없어지는, 서영의 그 깊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




0. 첫 장면.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울리는 현악의 음音. 악기의 가느다란 줄끝에 간신히 매달려 흔들리는 음처럼 불안한 서영의 마음을 빗대어 그려낸 오프닝이 기억에 남는다. 감정을 지그시 고양시키는 음률 너머로 희게 몰아치던 파도. 그리고, '질끈'과 '담담' 사이를 오가는 서영의 옆얼굴.




0.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이미지, 아찔한 고층빌딩. 그 높디높은 빌딩에서의 삶이 버거운 서영은, 어쩌면 이 사회 자체가 너무 버거운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 하는 서영은, 두어줄 로프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린 외벽 청소부의 모습에서 자신의 심정을 보았을 것이다. 실제적인 외줄타기와 심정적인 외줄타기. 그 모습이 겹쳐질 때, 이 영화 제목의 중의적인 이미지 또한 슬며시 떠오른다.


'어지러움' '현기증'의 뜻을 가진 <Vertigo 버티고>. 그리고 '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다'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버티다'의 응용형 '버티고'. 불안증에 시달리는 서영의 옆얼굴을 볼 때마다 그 단어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올랐다. 유리창에 비친 희미한 모습의 서영, 그 존재의 흔들림이 느껴질 때마다 그랬다.




0. 굳이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도 서영의 옆얼굴과 뒷모습,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정들이 좋았다. 다만, 엔딩의 너무 만화적인 느낌이 아쉬웠다. 곱씹기에 좋았던, 가만가만한 단상으로 채워져 있는 씬들의 절제된 전개가 좋은 작품이었으니, 마지막까지 그 호흡을 유지했더라면 더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진하다.




0. "오늘 하루도 몹시 흔들렸지만 잘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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