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연 Oct 23. 2019

뮤지컬 <사의 찬미>, 까만 파도가 몰아치는 새벽 4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캄캄한 어둠. 적막한 바다.






/ 스포일러 주의 /






0.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시모노세키발 부산행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캄캄한 어둠. 적막한 바다.



0. 6연이 올라오도록 매번 작정만 하고 정작 관람은 못했던 작품, <사의 찬미>를 드디어 보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불꽃 같이 타오르는 애정. 그 곁을 맴도는 사내의 파괴적인 심사. 훼방 받은 사랑은 안으로, 안으로 더욱 꽁꽁 뭉쳐버려 도저히 깨질 수 없는 구슬이 되었다. 그 한 덩이 구슬이 불같은 사랑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 때, 시커먼 파도 위로 흰 재가 흩날렸을 것만 같아 마음이 시렸다.



0. 푸른빛의 <사의 찬미> 포스터는, 심덕이 배로부터 추락하며 그 시야에 담았을 차디찬 바닷물을 담고 있다. 새벽 4시, 아직은 캄캄한 사위에 배의 옆구리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가득했을 어두운 바닷물에 닿으며 심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닷바람에 시린 손을 꼭 붙들고 "우린 새로운 세상으로 갈 거야. 준비됐어?"라던 우진의 약속을 생각했을까. 그 너머의 이국적이고도 자유로운 이태리를 상상했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들이 사내의 예정된 결말에서 벗어난 것이 맞기나 한 건지 결말의 진위를 의심했을까.


그녀의 심사가 어떤 생각을 담고 있었든 그 모든 방향에는 진한 시름이 배어있다. 암담하기만 한 시국, 그 시국 아래 일본에 적籍을 둔 조선인으로서의 미래, 음악하는 이로서의 장래,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까지.


그 깊은 슬픔을 노래하는 심덕의 넘버는, 그 이를 데 없는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가사의 음절음절이 마음을 스쳐갔다. 바닥에 깔리는 절절한 목소리가 그렇게 구슬피 울릴 수가 없었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0. 배로부터의 추락 이후 그들이 어떤 기로에 섰는지는 알 길이 없다. 차디찬 바닷물이 심덕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것이었는지, 혹은 그 바다를 헤엄쳐 결국 살아내어 새로운 세상이 되어줄 이태리로 떠났는지. 그러나 그들이 추락하기 전 서로의 손을 붙들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작은 희망에 젖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굳이 어떠한 결말을 특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그저 그들은 그렇게 살다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노라고, 그 다음 일은 알 길이 없으니 알려 하지도 않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버티고>, 견딜 수 없음을 견딜 수 없어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